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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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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5회 작성일 22-09-2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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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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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  (1938 ~  )

대표작으로는 <즐거운 편지>, <풍장>, <삼남에 내리는 눈> 등이 있다.
아버지가 <소나기> 로 유명한 황순원 소설가이며

딸 황시내도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3대에 걸친 문인 집안이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감상>


이 시는 시인이 고 3때 연상의 여자를 짝사랑할 때 썼다.

시를 쓸 당시 물려받은 연애시의 전통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다.

고려가요 '가시리'에 깃든 '가시난 닷 도셔 오쇼셔‘가 이 시의 주제다.

결국 저 세상에 가서라도 기다릴 테니 '가시난 닷 도뎌 오쇼셔' 하는 애틋한 노래.

한용운도 '아,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노래했다.

그러나 이 시에선 그 오랜 전통에 '변형'을 꾀했다는 사실이 다른 점.

샤르트르 류(類)의 실존주의가 유행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그는 시의 변형을 실험한 것이다.

'실존(實存)이 본질(本質)을 선행한다 고로 사랑도 늘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늘 선택을 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끝이 있을 수 있다’는 중요한 생각이

시 안에 들어 있다. 한 번 주어진 사랑의 본질 때문에 그 사랑이 일생을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시의 초점이다.

사랑은 이렇듯 동사형이라서 연인들을 잉잉(ing-ing)거리게 만드는가.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해가 잘 안 되던 부분이다. 그러나 그 '반드시' 에서 오히려 사랑의 변증을 넘어선 신비한 생명력이 느껴졌다면,

황동규 시인의 시편들에서 두루 감지되는 건, 실존의 변화로서 존재의 거듭남과 일종의 낯설게 하기라 할까.

즐거운 편지를 좀 더 밀도 있게 바라보면 그다지 즐거울 것도 별로 없다.

오히려, 유한有限한 (그러니까 거창한, 영원불변한 신의 사랑 같은 건 일찌감치 빼고 어디까지나 변화무쌍한

인간적 측면에서)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일체의 비애悲哀로운 예감을 즐겁게 말하고 있단 느낌마저 든다.

그건 일종의 '극서정(克 혹은, 極) 抒情을 통한 존재의 전환'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이러한 존재변화에 대한 입장이 본격적으로 극명克明하게 노래되고 있는 게

바로 죽음에 관한 시(동시에 삶의 황홀함을 노래한) '풍장風葬' 연작시이다.

죽음이란 게 없으면 삶의 황홀함도 없다는,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 <풍장 27> 전문
 

                                                                                                                                                                                        

                                                                                        - 오정자
 


<희서니도 한 덧붙임>


오 시인의 시감상이 시의 수직적 깊이와 여운을 더 하는 느낌.

종래의 운율적인 서정의 흐름 (김소월, 박목월, 서정주 類)에서
산문체의 극서정克抒情으로 탈피한 시라 할까.

그의 시편들에서 감지되는 건 절대를 향한 인간의 자세,
그 자체가 비극적이란 거.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의 그의 시편들의 주요한 배경)

요즘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연시가 꾸준히 있지만.

또, 게시판에도 변치않을 사랑은 심심치 않게 올라오지만.

인간이 지닌 무상성(無常性 : 허무하단 의미가 아니라, 영원히 항상恒常한 건 없단 의미)에
변하지 않을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시인은 일찌감치, 고교 시절에 그 모든 걸 눈치 챈 것을.

근데, 여기서 그냥 주저앉는다면 그의 시가 빛을 발할 이유도 없겠다.

쓰러짐의 몸짓을 표현하되, 스스로와의 치열한 대결의 자세를 취한다는 거.

또한, 운명적으로 치솟는 갈구가 빚어내는 안타까운 사랑을 내포하는 데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이 있다.

따라서, 그의 '즐거운 편지'도 침착하고 담담한 어조語調의 <절망적인 희망>인 것이다.

인간 앞에 영원한 사랑은 절망일 수밖에 없으나.
(왜?  인간세상의 영역에서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다만, 깨어진 사랑을 딛고 기다림의 자세로 새로운 자신을 갱신更新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희망을 시적으로 예언한다.

하여, 마음의 변화는 존재 전환의 (즐거운) 계기가 되는 것을.
그의 편지도 그러한 것을.

사랑도 깨어짐으로, 그 황홀했던 순간이 더욱 빛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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