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떠 있는 높이 =김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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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0회 작성일 22-09-28 18:21본문
손이 떠 있는 높이
=김미령
주머니 없는 상의가 손을 길들인다 더듬던 손이 잠잠해진다 옆구리 어딘가에 있을 스위치를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이쯤이라는 거 오래된 느낌으로 아는 절벽 한 다발 웃음을 안고 달려갔지 그 아래 숱한 헛발질이 쌓여 시들고 있었지 발버둥을 움켜쥐고 돌아왔을 때 둥지에 남은 몇 개의 깃털 누군가 발자국 찍힌 심장을 주워 나뭇가지에 끼워 두었다 네 목에 매달린 펜던트가 나를 비웃듯이 내가 버렸던 단어를 누군가 악착같이 붙들고 있다 작은 망치 하나 들고 세상의 무릎을 두드리고 다니는 지질학자처럼 작은 무덤 하나 찾아 헤매고 모두 떠난 공중에 바람이 떨어뜨리고 간 허물이 나뒹굴고 저녁이면 수확한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문을 두드린다 촛불들끼리 식사를 한다 손은 자신을 걸어 둘 만한 높이를 찾지 않고
鵲巢感想文
무엇을 담을 수 있는 공간 ‘주머니’, 아래와 위를 구분하는 ‘상의’, 시 인식과 부재를 가늠하는 동사 ‘더듬다’와 인식에서 부재로 전환하는 장치 ‘스위치’, 그리고 부재의 극적인 표현 ‘절벽’과 ‘헛발질’, ‘발버둥’ 무언가 읽은 흔적 같은 그러니까 왼쪽 세계관에 다녀간 오른쪽의 자취 말하자면, ‘깃털’, ‘발자국 찍힌 심장’, 여기에 시의 유사성을 ‘펜던트’에 놓고 너와 나의 교감으로 무릎을 쓴다. 무엇보다 지질학자에 조금 해학적으로 닿는 데다가 결국, 작은 무덤이라는 열망을 공중에서 지켜보듯 그 허물을 시는 맞게 되는데 이종이겠다. 그것을 촛불로 치환하기까지 그러고 식사하는 군중과 손은 내면적인 의식이나 자각을 표현하지 않는 요즘 시의 시각적 대명사, 그러한 높이는 사실 무관심에 가깝다. 그러니, 시는 유희적인 산물이며 거기에 맞는 표현력이 오히려 더 주목을 받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기획사에서 잠깐,
마스크 낀 흑인 여자가 소파에 앉아 있다 펑크스타일 머리가 한 공간을 다 메울 듯 가깝게 들여다본다 하여튼 서양 쪽 애들은 몸매 하나는 끝내줘, 여권은 아니었지만, 소속의 패스포트처럼 넣어야 할 공간과 사진을 꺼내놓고 이거 되느냐고 물으며 팔 만원, 노노노노 낫 리치 육 만원 OK, 사채놀이처럼 어느 수금장을 만든다 여자는 소파에 앉아 이국의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바깥은 가을 하늘처럼 맑았다
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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