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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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2회 작성일 22-10-07 19:58본문
구두
=이영광
길들이 반군처럼 에워싸고 기다리는 구두병원 앞 슬리퍼 신고 앉아 잠깐, 희망을 생각한다 오지도 않았으면서 떠날 줄 모르는 것 희망만큼 곤한 그리움도 없었지만, 희망이 구두같이 구겨서 터덜대는 발걸음이라면 그냥 그만 우릴 지나쳐가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희망 아닐까
구두처럼 내 몸 전부를 다 받아준 건 없었다 구두처럼 막다른 어둠까지 질주해준 것도 한사코 함께 되돌아와 준 것도 없었다 수술실로 들어간 늙은 애인, 내가 돌아앉아 저리고 미안한 두 발을 주무르노라면 구두는 새 굽을 신고 어딘가로 또 어질어질 가려 하겠지
구두를 만류하여 가슴에 품고 오늘은 회복실 같은 집에 일찍 돌아가야겠다 쥐어본 적 없는데도 놓을 수 없는 것, 아침이면 어서 나가보자고 또 우쭐대는 구두 두 짝의 재촉을 죽은 이를 찾으러 가듯 따라나서게 되는 것이 희망일까
검은 동공이 빛을 내듯 시커먼 구두약이 광이 되듯 무언가 잠깐, 희미하게 다시 타오르는 반드시 타오르고야 마는 오후가 있다 새 길의 기치창검이 하염없이 공중을 찌를 때
얼띤感想文
구두는 첫째 신발에서 오는 그 구두 둘째 마주 대하여 입으로 하는 말 셋째 맞대어 놓고 언짢게 꾸짖거나 비꼬아 꾸짖는 일. 넷째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 데에 몹시 인색한 사람을 말한다. 동음이의어다.
길들이 반군처럼 에워싸고 기다리는 구두병원 앞 슬리퍼 신고 앉아 있다. 언어가 나아가야 할 길은 막막하다. 뭔가 쓰고 싶을 때 턱 막힌 그런 기분을 묘사한다. 슬리퍼처럼 가볍지만, 어쩌면 슬리퍼처럼 오지기 밟을 걸음은 아닌 길에서 내 언어의 치료는 역시 글(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구두처럼 내 몸 전부를 다 받아준 건 없었다. 말 한마디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내 마음에 위안하는 말이거나 말로 하루를 되돌려 본다거나 말 잘 다듬어 고삐 풀어놓는 재미와 그러니까 말이 되는 거 말이 씨가 된다거나 말도 안 되는 말 꺾으며 말 안 되고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르는 말에 잃고 난 후 외양간 고치듯 두 발을 꼭 안겨주는 구두병원을 오가며 구두를 다듬고 구두약으로 광까지 낸다면 오늘과 같이 기치 창검이 하염없이 찌르는 날도 있겠다.
저기 저 오는 한 짝의 구두에 여기 아둔하게 앉은 이의 발에 잘 맞지 않는 구두 한 짝을 놓고 나는 요리조리 신어보며 오후 바닥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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