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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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22-10-07 20:43본문
부치지 못한 편지
=이승희
여기는 지상에 없는 방 한 칸, 나는 여기서 봉인된 채 녹슬어가는 중입니다. 지리멸렬한 문장들이 구름처럼 떠돌다 목마름으로 내려옵니다. 내가 꿈꾸는 것은 매일 조금씩 지워지는 것.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덜어내는 일. 이 도시가, 사회가, 친구가, 애인이, 지하실 박스 속에 담겨 몇 년째 풀지 못해 썩어가는 책들이 나를 들춰보고 조금씩 떼어먹기를, 그리하여 어느 여름날 선풍기 바람에 흔적 없이 날아가버릴 수 있으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은 부치지 못한 대로 잠들고, 집 나가 돌아오지 못한 마음은 살아서 내 죽음을 지켜보길. 그러니 하나도 새롭지 않은 절망이여 날마다 가지 치고 어서 꽃피워 융성해지시기를. 내가 지워진 자리, 내가 지워진 세상을 가만히 만져본다. 따뜻하구나, 거기 나 없이 융성한 저녁이여.
얼띤感想文
거기 혼자 머리 꾹꾹 쥐어뜯으며 어둠만 폭 덮어쓴 그대, 손이 짧아 위로의 거품에 다만 폭 적신 흰 발목처럼 고요합니다 근거 없는 구름으로 살아가기엔 비좁은 자리 소맥을 비우듯 싸한 그 아찔하면서도 멍한 순간들과 촉촉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빛은 오지 않았습니다 밤새 웃옷도 벗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 오로지 등을 보이며 뒤척이기만 한 여자 초저녁부터 퍼마신 독한 술에 속까지 다 비워낼 듯한 트림과 얼굴에 끼얹을 듯한 율동에 순간 끼얹을 뻔한 구토를 꾹꾹 참았던 밤 가만히 생각하면 오지 말아야 했던 그 변기 납품업자와의 시간을 마셨던 그 우울함에 우린 더 취해 있었던 겁니다 전혀 책을 좋아하지 않을 듯한 용모의 여자와 공무원처럼 말 없던 그 여자까지 상당한 시간을 마셨지만 여기서 우려한 것은 세상은 참 비좁고 내 가슴에 진심 어린 말은 허공에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두꺼운 책을 안으며 갔던 그 두 여자가 모르는 기린은 치우지도 않아 난잡한 테이블을 닦은 아침이 있었습니다 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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