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자루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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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2-10-09 19:43본문
가죽자루
=권민경
나는 개이거나 곰이었는데 그 둘을 다 좋아했다. 꼬리가 길거나 짧은 육체.
빌딩 사이로 스며드는 꼬리. 사라진 몸 대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콧수염이 씰룩거린다. 길 건너편. 우체통 뒤에 동물의 눈이 숨어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 간다. 무빙워크 위를 걷듯 아스팔트를 스쳐서. 긴 바퀴 자국을 남기며 멈추는 자동차. 혼은 연쇄적으로 투명하다. 이다지도 날렵한 몸이 도로를 가로지른다. 각자의 자루에서 벗어난 눈들.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마주치는 것. 길을 비키는 사람들. 좁은 자루의 커다란 입. 사라진 다리. 나를 피하는 표정. 놀란 목젖. 눌린 자루에서 삐져나오는 혼.
질기며 약하기. 가로등 사이에 숨을 수 있는 능력. 나타나고 싶을 때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재능. 숨는 버릇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자꾸 자루를 삐져나오는 목숨 때문에 스카이라인은 미어진다. 이 자루가 터지지 않게 껴안기.
품속은 따뜻하다. 가득 메운 존재들. 도시는 빵빵하다. 목적지로 향하는 우편 꾸러미. 자주 받고 싶은 인사가 튼튼해진다. 냄새 없이.
얼띤感想文
시제 ‘가죽 자루’는 혼이 혼을 바라보거나 바닥이 생물을 수평이 수직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죽음의 공간에서 마치 바라보는 생물의 상황을 묘사하거나, 더욱 친숙한 교감을 향한 어떤 몸부림 같은 것도 보인다.
나는 개이거나 곰이다. 꼬리가 길거나 짧은 육체 시라는 존재가 그렇다. 읽는 이의 마음은 어떤 상황일지 또 그 상황에 맞는 어떤 변이로 닿을지는 모르므로 화자는 수시로 변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빌딩과 꼬리 몸과 아지랑이 콧수염과 동물의 눈, 그리고 우체통 이러한 시어는 죽은 자의 처지로 보면 그것들의 개념은 현실 세계에서의 개념과는 다르겠다. 물론 기표에서 느끼는 읽는 자는 기의에 그 꼬리가 길거나 짧은 육체를 가지겠다.
사람이나 동물, 긴 바퀴 자국, 자동차, 도로를 가로지르는 것들, 각자의 자루에서 벗어난 눈들은 모두 수직의 상황 묘사다. 아스팔트는 수평으로 어쩌면 긴 바퀴 자국처럼 좀 더 밀착을 그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굳고 단단한 검정을 상징한다. 마치 훗날 수많은 자동차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같기도 해서
자전거처럼 두 구체로 움직이다 혹여 마주치는 것, 그러나 비켜나가는 사람도 있고 입만 살아 커다랗기만 하고 다리가 사라졌거나 놀란 목젖 이미 자루에서 삐져나온 혼을 보기도 하는 건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생물체를 묘사한다.
그러나 걷고 있거나 타고 가는 것들 뛰거나 기어가는 것들도 있겠다. 휠체어이거나 목발이거나 어깨동무처럼 가는 저 무리까지 삐용삐용 마라톤의 경주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인사다. 냄새가 없다. 다만, 가죽 자루처럼 잠시 잠깐의 로드 킬 같은 그 순간을 면한 생물체의 기이한 행동들을 보며 자전거를 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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