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람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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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5회 작성일 22-10-12 22:36본문
한 장의 사람
=이병률
나는 1900년 생이다
몇 년을 살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나만 이불을 덮느라 누구를 덮어주지 못했다 고양이를 빌려 몇 년을 산 적이 있다 신의 자잘한 부름도 몇 번 받았으나 계시는 거부하였다 태어날 적에 나는 나무 위에 걸려 있었다 작은 창문을 가지고 살았으며 집을 옮기면서는 더 큰 창문이 있는 집을 택하였다 몇 번 국적이 바뀔 뻔하였으나 가죽 깃발처럼 한없이 나부끼면서 느리고 천천히 지나가야지 했다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유혹을 관통했다 인생이 앞으로 밀고 나가는 기분이 들지 않은 시절에는 심장을 깎아 마음 가운데 앉혔다 그 사실을 감추지 않았는데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종이를 태워 누군가를 저주했다 그 사람은 곧 내 시간 앞에서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그림자를 하나 더 내 발치에서 붙이고 살았다
나는 1900년 생이고 나는 계속해서 살아간다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단 일 초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살아 춤추게 하고만 싶다 그러고 보니 더러는 지평선과 산맥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최고의 목적이라면 신세계를 보는 일이겠지만 아직은 그때가 오지 않은 것 이제 얼마를 살더라도 당분간의 십 년 동안은 돌에다 비밀만을 새길 것이다 맨손으로 꾹꾹 눌러 선명히 새길 것이다 그러고는 나무상자 하나를 구해야 한다
얼띤感想文
시적 화자인 나는 1900년 생이다. 하나 구체 빵빵 아니면 영영, 영원한 삶을 혹은 빵처럼 영혼의 안식이거나 불러오는 경적음 같은 소리 은유로도 읽을 수 있겠다.
시는 전체적으로 이야기식으로 전개한다. 꽤 유희적 산물이다. 이불은 시적 소통의 부재를 상징하며 고양이는 그 부재의 매개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독자를 제유한 것이겠다. 나무는 시의 견고성을 대변하기도 하고 화자와 같은 성질로 죽음을 몰고 온 신적 존재다. 저 끝에 나무상자가 나오는데 이는 시의 인식을 불러온 고양이 죽음과 같은 그러니까 1900년 생에서 변이 한 또 다른 성질로 보면 되겠다.
몇 번의 국적이 바뀐다는 말, 몇 번의 독자의 몸을 빌려 옮겨 다녔지만, 다만 그것은 가죽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시 인식 부재를 대변하고 이와 반대의 표현으로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유혹을 관통했다가 된다. 가죽 깃발은 아직 인간으로 전개하지 못한 애완 같은 고양이의 몸짓을 상징하며,
언제나 죽음의 바닥에서 펴보는 세상은 단 한 번이라는 것, 그러나 거기서 살을 붙이고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러므로 인생이 앞으로 밀고 나가는 기분이 들지 않은 시절에는 심장을 깎아 마음 가운데 앉혔다고 묘사한다. 늘 가슴에 지니며 어떤 문장을 구사할 건지 시인의 책무로서 말이다.
종이를 태워 누군가를 저주했다는 건 커피를 마시다 말고 뛰쳐나간 것과 같아 커피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아니, 커피라는 것도 모르고 무슨 독배처럼 인식한 건 아닐까 아니 국화에서 핀 국화차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커피가 나왔으니까 자리 벌떡 일어나 가버린 사실처럼 닿는다.
더러는 지평선과 산맥을 돌보는 일, 바닥에 가라앉은 것과 바닥에서 융기한 것을 돌본다. 그러니까 완벽한 시의 세계인가 그것을 판가름하는 무슨 잣대처럼 본부기로서 말이다. 당분간 십 년 동안 돌에다 비밀을 새긴다. 십 년, 사거리의 상형문자처럼 밟아야 할 세계다. 또 다른 변이를 내가 건져 올릴 때까지다. 시의 가치는 거기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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