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처음 지닌 것 =윤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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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4회 작성일 22-10-14 21:28본문
나의 가장 처음 지닌 것
=윤진화
횃불을 들고 처음처럼 기다린다. 스스로 벗긴 내 처음을 말아 들고 불 피우고 당신을 기다린다
잘도 탄다, 양날 작두 타는 만신처럼 잘도 탄다, 털이 타고 팔다리가 타고 입이 바싹 타고 나면 불을 품은 숯처럼, 당신을
함부로 버린 처음을 돌려주기 위해 기다린다. 후회를 생각하고 또 후회하며 당신을 기다린다
칼날 솟은 혀에 스쳤을 뿐인데, 창자를 베고 심장을 베고 삼킨 눈물 베고 나면 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부둣가의 시신처럼, 당신을
그러나 나는 안다
당신은 앞이 캄캄해서야 온다, 물비린내 가득 품고서야 온다, 지금의 나처럼
얼띤感想文
횃불은 시의 발화점이다. 인식이며 안식이다. 그러니까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처럼 닿는 삶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수평에 이르지 못한 사랑이며 죽음의 눈빛만 갈망하는 당신이다. 당신의 노력은 여간 심상치가 않다. 마치 양날 작두 타는 만신처럼 오가는 심리적 열애, 만 가지 갈래로 뻗는 제각각의 털처럼 그것을 태워야만 닿을 수 있는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혹은 닿을 수 있는 팔다리마저 태워야 한다. 더 나가 입이 바짝 타고나서야 숯처럼 되어버릴 수 있는 곳, 그곳에 앉은 당신을 기다리는 시의 화자다.
어쩌면 처음 그 자리가 가장 이상적이며 보람으로 깃든 것이었다. 떨어진 칼날에 서서 모든 걸 잃기 전까지는 후회하고 후회하며 원래 당신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시의 시작이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려면 멀었다. 지긋지긋한 기다림과 뚝심만 남았다. 그리고 서프보드의 균형점을 찾고 흔들거림에 대한 안정을 맞출 수 있다면 캄캄한 어둠은 어느 정도 벗길 수 있을 것이다. 바다의 짠 내가 오른다. 푹우욱 푹, 오르는 물고기의 시신 썩는 냄새까지, 이 허공에서 대가리가 무거워 처진 바늘귀에 실만 엮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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