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프로젝트 =박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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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 프로젝트
=박지일
헛도는 핸들 앞에 앉아 밤의 도로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나를 위한 교통정리 한 번쯤 필요한 것이었고, 좌우로 늘어선 휴게소 굴뚝은 오늘도 연기 끝내질 않네. 이 도로 슬슬 지켜워. 아반떼 안으로 연기 말려들고 어디 땅 디딜 만한 것 내게 남아 있나, 바지 뒷주머니라도 뒤적여보는 동안 이 아반떼는
내가 조수석 앉아 담배 태우는 장면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족. 방금 창 바깥으로 담배 연기와 함께 흘려보낸 정황이므로 나는 힘주어 엑셀이라도 밟는 수밖에
아반떼 속력 높아질수록 어깨로 전해지는 진동 강해지고 흔들리는 어깨는 인물의 심리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취급되곤 한다지만 거기
다 틀렸습니다 평론가 양반. 이것만은 다른 해석의 영역으로 퉁 치고 넘어갈 수 없겠습니다. 지금 아반떼 안에서 나 행복 겨워 죽을 것만 같고요. 조금 과장하여 좌우 어디 가드레일이라도 발견한다면 전방의 노루 같은 것 쳐버릴 수도
얼띤感想文
시제 사카린 프로젝트에서 사카린, 죽음(死)의 자동차(카) 린(鱗) 물고기 비늘이다. 魚에서 오는 語의 일종이다. 헛도는 핸들을 본다. 물론 시 객체를 상징한 시어다. 핸들은 동그랗다.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면 도넛으로도 치환할 수도 있는 단어다. 밤의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밤은 어둡다는 데에서 모르는 한 사실에서 무작정 읽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좌우로 늘어선 휴게소 굴뚝, 좌우다. 별자리(좌=죽음)와 현실 세계(오른쪽 세계관 雨며 祐인 데다가 遇에서 郵로 간 友 혹은 宇다.) 그 휴게소 같은 글, 굴+뚝(둑)을 본다. 아반떼는 我反떼겠다. 나를 반하는 떼거리가 나를 보고 있으니까! 그것은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여보는 것에 비유했다. 걸어가는 것에 대한 입을 바지에서 이미 벗어놓은 바지의 뒷주머니를 읽고 있다. 그러니까 주머니는 하나의 얘기를 상징한다.
담배는 성질이 잘거나 마음이 좁은 사람을 주로 비유하는데 막힘이 있거나 짤 거나 뭔가 이어붙이기는 해야 하는데 도로 안 될 때는 거꾸로 거기다가 붙여보는 것도 다반사다. 그렇게 해서 치환하거나 교체하거나 아예 확 들어내어 갖다 붙이기도 하는 이도 다완처럼, 예술적 행위의 그 시작이다.
창은 늘 죽음과 삶의 경계다. 방금 누가 보고 갔거나 거기서 피어나는 것 같은 아지랑이 같은 것에 여기선 더 밀어 올려다 주기까지 해서, 액셀이라도 밟는 수밖엔 없다.
아반떼 속력은 더욱 높아지겠고 어깨는 진동으로 닿기까지 한다. 물론 너와 나와 맞대는 상황 묘사며 그것을 대변해주는 것은 어깨다. 나란히 한다면 죽음을 맛보는 것이며 수평이거나 지평이거나 바닥에 누운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다 틀렸다. 평론가 양반, 아반떼 안에서 행복에 겨워 죽을 것만 같은 나, 그러니까 시 인식이다. 카페에 종일 손님 하나 없다가 뒤늦게 한 명이라도 온다면, 보험 영업하다가 구구절절 어찌 안 되다가 고액 건이라도 하나 덥석 온다면 그것은 빛이며 영광이다. 조금 과장하여 좌우 어디 가드레일이라도 발견한다면 전방의 노루 같은 것 쳐버릴 수도 있겠다. 즉 죽음을 맛본다는 것을 肉과 붉음의 상징인 노루로 치환해서 쓴 것이겠다.
댓글목록
김재숙님의 댓글

풀어 놓은 감상평에 즐감하고 갑니다
아반 떼에서 나는 달리던 나의 도로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다 버리고 반대편에 서서 도로를 휘어져 올라가는 나의 반대편 마음에 자유를 만낏하면서 말입니다.
숭오님 ~~ 쌀쌀한 날씨 건강하세요 ~~^^
崇烏님의 댓글

ㅎㅎ, 오래간만이예요..^^! 요즘 날씨 심상치 않지요. 조석으로 좀 찬 거 같아요.
경기 말이 아닙니다. 이제 연말 다가오니, 사람은 만남으로 붐비겠지요.
이것으로 좀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건강 챙기시고요. 이렇게 반가운 이름^^!
인사 주심에 오늘 마음 한결 또 놓입니다. 감사합니다.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