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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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4회 작성일 22-11-15 20:21본문
순례
=송재학
이틀 너머 고원에 걸어온 우리는 순례자들 사이에 섞였다 고원에는 녹모파 이끼류의 어슬렁거리는 오체투지로 봄이 조금 왔다 바람과 말(馬)을 합친 깃발의 사원뿐인 넓은 땅은 한 사람의 손바닥처럼 고요하다 계곡 건너편, 금방 솟아난 첩첩 연꽃으로 무량겁의 산이 세워졌다 산이라는 곡선이 능선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날카롭기만 하다 풀도 나무도 없다 오직 먹물 가득 머금은 운두와 부벽의 준법(峻法)만 번갈아 바뀌어간다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수천 마리 새의 풍화가 새겨진 돋을새김 때문에 아득해지는 중이다 바람 소리 없으나 강물을 닮으려는 바람과 길을 기억하려는 바람이 서로를 밟고 있다 사소한 시선이라도 이 높이에서는 구름의 채색을 닮는다 누군가 불안 대신 예언을, 누군가 평화를 얻었기에 고원은 어스름의 기척을 넘겨받았다 산의 등뼈에 붙은 녹슨 경첩이 삐걱거리면서 모든 소리가 귀를 달았기에 바람이 다시 드세진다 만상은 수줍은 결과부좌이다
얼띤感想文
이 시를 읽자마자 이틀이라는 시어에 눈독이 간다. 마치 이틀 저 틀 하듯이 어떤 모형을 예시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이는 시인이지만, 시를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종교처럼 닿을 때가 있다. 아니 잦은 일이지만, 일과를 마치고 무슨 순례자처럼 찾는 곳은 손바닥처럼 고요한, 이 시집 한 권이 아닐까! 가만히 읽다가 보면 첩첩 연꽃이 무량겁으로 피면서 산은 붉게 솟는다. 그것은 마음 한 자락에 무언가 일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오래간만에 카페 음악회를 가졌다든가, 풀과 나무도 없는 오로지 음악으로 연말 분위기가 잠시 있었다는 일기를 뒤로하고 시는 계속 감상한다. 그러나 운두에 미치지 못하고 부벽에 가깝지 않은 얼굴로, 순간 수천 마리의 새만 난다. 아직 살아 있다. 살아 움직이는 사고의 채색은 산의 등뼈에는 이르지 못하나 무릎만 삐걱거리면서 하루의 귀를 씻어본다. 이나 저나 수줍기는 마찬가지다. 순례처럼 가진 이 시간이 좋다. 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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