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뒤편에서 종이들이 물결치고 펼치면 무너져내리는 건물들이 보여 맨발로 쫓겨난 아이가 연필 끝에서 굴러떨어진다 집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풀썩 주저앉아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괜찮니? 괜찮아? 묻는 말에 아이는 호흡이 가팔라지며 정신을 놓치고 종이 위로 피가 뚝뚝 흐르는 금붕어를 쏟아낸다 빨갛고 무른 몸을 퍼덕이며 울음을 멈출 때 돌아갈 집에 누가 있는 거니 괜찮아 나한테는 말해도 괜찮아 겁에 질린 아이가 대답 대신 잘게 찢어진 숨을 몰아쉰다 창문을 전부 걸어 잠그고 사촌 오빠의 젓가락이 속살을 헤집을 때 남은 한 점까지 은밀하게 발라먹을 때 아이의 벌어진 눈동자에서 압정이 흘러내린다 기억할 거야 절대로 기억할 거야 찢겨나간 장면을 온몸으로 꾹꾹 눌러박는다 어항은 깨진 채로 길가에 버려지고 뭉개진 저런 걸 누가 치우겠냐며 대낮에 도로 위에서 치여 죽은 금붕어를 못 본 척한다 아이를 안은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걸어가는 어깨가 비틀리고 겪어보지 않으면 전부 남의 고통인 거지? 펄떡이는 비명을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꽉 움켜쥐자 사방이 얼음처럼 녹아내린다
얼띤感想文
한 사건의 단면을 지면에다가 시적으로 도출한 일기처럼 읽힌다. 시인의 일기였는지 아니면 하나의 추억인지는 모르나 독자는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새에 집중한다. 거기서 오른 새와 내 안에서 구태여 삐져 나가려고 하는 새와의 조율처럼 저기 저 쏟은 금붕어를 다만 연필로 지그시 눌러보는 일은 어쩌면 시인에게는 희열에 뒤섞인 아픔이겠지만 아이의 눈으로 사촌 오빠처럼 젓가락 들고 헤집어보는 맛도 독자의 몫이다. 가만 생각하면 억지로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릴 필요도 없겠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일을 치렀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늘 지면에 출근하듯이 출근한 돈키호테가 있었고 여기서 끼니 해결하며 또 다른 곳으로 출근한 바지가 있었다. 또 거기서 조감도로 조감도에서 회계사 사무실과 동사무소를 거쳐 영천 모 고등학교에 가기까지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모처럼 들려온 기계 견적은 흐뭇한 마음을 갖게 하지만, 행정실을 거치고 나면 만만치 않은 일일 것만 같다. 그나저나 대학 학우가 언뜻 지나간다. 그는 술 마실 때나 안 마실 때나 늘 이렇게 말했다. 농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농협, 농민도 아니지만, 신용으로 낸 대출이 그새 이자만 올랐으니 나에겐 또 하나의 벼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