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이 붉게 짓는다 =우남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2회 작성일 22-12-10 16:31본문
말뚝이 붉게 짓는다
=우남정
설렁탕집 마당에 개 한 마리 묶여 있다 손님이 와도 딴청이다 아니 손님이 엎드려 있다 개 꼬리가 움찔 움직이다 만다 심드렁해진 손님이 마당에 한동안 묶여 있다 24시간 사골을 끓여 대는 가마솥 밥집은 성업 중이다 마당에 묶인 라일락나무가 푸르다 그늘이 자꾸 움찔거린다 혀를 빼물고 늘어진 뱃구레를 뒤척여 먼 곳을 보고 있다 배경은 낡은 집과 먹다 만 밥그릇이다 저 나무 그늘에 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벌름거리던 코, 빳빳하던 귀, 달빛에 날 세워 짖어 대던 개 소리, 다 어디로 갔을까 길길이 뛰며 퍼붓던 그의 키스는, 저 개 한 마리 선지처럼 뜨거운 울음을 울은 지 언제였을까 주인은 가끔 먹이를 찾는다 주인이 엎드려 꼬리를 흔든다 그 그릇에 그 밥이다 개가 주인의 추억 속을 지나간다 주인이 개의 주위를 빙빙 돈다 주인은 개 그릇을 핥다 일어선다 목줄이 개의 반경을 그리다 만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햇살을 쬐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끈이 구불렁거린다 먼지바람이 오후의 신작로를 따라 피었다 흩어진다 울타리에 접시꽃들이 까르르 웃는다 그의 말뚝이 붉게 짖는다
얼띤感想文
말뚝은 묶어 놓은 저 개를 바라보고 있다. 손님은 점심을 먹고 딴청 하듯 들여다본 개, 그것은 지금까지 온 삶의 꼬리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마당은 타다만 장작과 언제나 보아도 비포장도로 같은 자갈로 점철된 놀이터나 다름없다. 24시간 사골을 끓이듯 삶을 우리는 것은 가마솥 같은 세상에 처한 의무겠다. 때는 여름이다. 라일락 나무의 향보다 라일락 나무 이파리가 푸르니까, 자꾸 흔들거린다. 마당에서 벗은 도살장에서 바라보고 있으니까 뒤척인 뱃구레가 벌름거리고 빳빳한 귀에 움칫거린다. 여기서 달빛에 날 세워 짓던 개소리는 그만 짖는다. 조용히 웅크리며 뚫어지게 날 바라보고 있다. 다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추운 겨울에서 기온의 변화를 느낄 순 없었으니까, 도착은 저기 나부끼는 초록 물결 아래에 이르고 감각은 오지 않는다. 생물이 죽으면 시·공간을 떠나 무생물로 다시 살아갈 순 있는 걸까, 짖는 건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투과하지 못한 슬픔의 진화 이륙에서 오는 추락의 기쁨은 생물의 자위일까, 아니면 무생물의 불수의 근육의 활동? 오늘은 오늘의 밥그릇을 보며 혀만 날름거린다. 말뚝은 묶인 저 개를 보며 개의 반경은 오직 주인의 사고의 한계선까지 끌고 간 신작로까지임을 울타리가 접시꽃을 보며 까르르 웃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