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의 기도/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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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9회 작성일 22-12-27 03:07본문
집시의 기도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었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 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 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이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삼아 물 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돼, 아빠! 안돼˝ 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나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감상>
인생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길래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저리도 무참히 무너져 내렸을까
오늘도 늦은 퇴근길
장산역에는 해고된 하루를 진탕 퍼마시고 쓰러진 고래무덤이 즐비해 있었다
정호승 시인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인생의 묘미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십여 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간 지금
이 시를 발표한 시인께서 내가 밟고 서 있는 광중의 끄트머리에서라도
살아남아 주길 고대해 본다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자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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