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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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2회 작성일 23-01-30 21:05본문
파수/김이듬
윗입술 아랫입술
아귀가 맞는 네 말
뭐 하러 다시 돌아왔니
우리는 불판 앞에서 소주를 마신다
끝끝내 벌어지지 않는 조개를 불판 위에서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억지로 벌릴 때
난 이미 죽었음을 과묵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어둠이 오면 밝아지는 너
주변이 잠잠해지는 순간에 깨어나는 너
시련이나 고통을 환대하는 너
너는 평범하다
번복 없이 꽃잎들은 피고
다툼 없이 나뭇잎이 제 자리에서 자라는 신비로 말미암아
우리의 엄살과 내숭은 아귀가 맞다
나보다 더 아프고 병든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게 의자를 지킨다
희소성이 중요하다 떠난 이나 죽은 이는 돌아오지 못하게 가능한 빨리 묻거나
태워야 한다
이제 자신보다 무능력한 사람들만 들어오게끔
이 구역의 출입을 통제한다
떠났다 돌아오면 뭔가 달라져 있을 줄 알았어
근데 뭐 하러 돌아왔어
모든 기억과 모든 추억은 실수로 귀결된다
늙고 병든 이민자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거다
죽은 이들도 돌아올 수 있지만 안 오는 거다
쓸데없고 주체할 수도 없는 능력 때문에
겸연쩍고 무안하고 폐가 될까봐 네 방을 노크할 수 없는 거다
추방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환송파티에 마지막 의례까지 마친 마당에
** 김이듬 시인
2001년 <포에지> 등단
시집<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감상>
퇴근길, 현관을 들어서자 앞서가는 여인이 인기척에 뒤돌아 힐끗 나를 보더니 고개를 휙 돌린다 난데없이 그녀의 발목에 누가 족쇄를 채운 듯 발걸음이 위태롭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다 나는 모르는 척 그녀를 앞질러 계단을 올라갔다 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불쑥 <외면>이라는 낱말이 뇌리를 스친다 손끝으로 크로키 한 장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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