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과 집 =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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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5회 작성일 23-03-09 22:36본문
짐과 집
=김 언
짐이 많아서 이사 가기가 힘들다. 이 짐을 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져가라고. 단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빼놓고. A가 와서 소파를 가지고 갔다.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B가 와서 티브이를 가지고 갔다. 이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이다. C가 와서 냉장고를 짊어지고 갔다. 저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이다. D가 와서 책상과 의자와 책꽂이와 그리고 산더미 같은 책을 트럭에 싣고 갔다. 아까워해봤자 더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남아 있는 물건이 하루하루 줄어들수록 나의 고민도 하루하루 줄어들고 드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사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이삿날 친구들이 나의 이사를 돕겠다고 찾아왔다. 짐이라곤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으쌰으쌰 힘을 모아서 새집으로 나를 옮겨놨다. 나는 얌전히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가서 누워 있다. 너무도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또한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을까?
얼띤感想文
우선 언어의 형태미를 본다. 짐과 집, ‘ㅁ’과 ‘ㅂ’의 차이인데 뜻은 확연히 다르다. 물론 시와는 다른 얘기다. 우리보다 익히 한글의 멋을 알았던 외국 선교사가 있었다. 구한말, ‘호머 헐버트’였다. 그는 우리 글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소리글자가 또 있다니, 조선이 이리 쉬운 글자가 있으면서도 왜 굳이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는 것인가? 지금은 남의 나라에 지배를 받고 있지만, 한 번은 필 거라며 예언 장담했다. 누구보다 우리 글을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 그는 우리말을 이탈리아어처럼 음악적인 율동 미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율동 미를 곁들여 매일 즐기는 시와 감상 우리는 언어적 사치를 유희하는 세계 유일의 민족이다. 하루라는 짐을 내려놓고 하루라는 집에 내려놓는다. 나의 하루를 위안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또한 내게 꼭 필요한가? 나의 하루는 유동적인 것과 고정적인 무언가를 이끌게 한다. 짐이 불안한 세계에 대한 책임 같은 거라면 집은 외부세계와 차단한 고정불변의 어떤 상황처럼 보인다. 하루를 옮겨 놓는다.
하루=1. 한 낮과 한 밤이 지나는 동안. 대개 자정(子正)에서 다음 날 자정까지를 이른다. 2. 아침부터 저녁까지. 3. 막연히 지칭할 때 어떤 날. 4. 다락에서 내림(下樓). 5. 옥의 얼룩진 흔적이라는 뜻으로, ‘흠’을 이르는 말(瑕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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