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 똥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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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 똥
=송재학
야크 똥에게 ‘너 잘 씻고 있어’ 다독이다가 오래된 평화 때문에 같이 담벼락에 기대고 만다 얌드록쵸 호수 너머 햇빛을 견디는 골목이었다 야크 똥은 메주처럼 잘 말라가고 있다 콩인지 뭔지 낮달 같은 알갱이가 티베트 문자(藏文)와 함께 박힌 메줏덩이를 햇빛이 보릿단으로 뾰득뾰득 씻어낸다 반짝거리니까 껍질과 속살 사이 유채밭 경작지가 자꾸 넓어지고 있다 두꺼운 목판본 바람까지 밀봉되었다 집집마다 수천 장 야크 똥이 담장이며 지붕을 덮고 있다 불을 지피기도 전에 온돌처럼 데워졌다 어린 시절 돼지 축사에서 맡았던 더럽고 역겨운 냄새는 오해였던거야 참으로 에워서 돌아가는 먼 길이구나 냄새여, 메마른 땅에서 수행하는 라마여, 초근목피 드문 곳의 땔감이었으니 나무 타는 냄새와 닮았다
얼띤感想文
3월 봄날 첫 주말을 맞는다. 기온이 많이 온화하다. 더없이 살기가 좋은 날씨다. 시인 송재학 선생의 시집 ‘검은색’ 첫 시, 야크 똥은 그러니까 서시다. 선생은 티베트 얌드록쵸 호수와 그 일대를 여행하고 오셨나 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는 이 문장이 하나의 기행문이 아니라 시집에서 읽으니 시로 보아야 한다. 시는 하나의 비유로 얼마나 시 사랑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며 읽는 맛, 순도 높은 문학의 한 부류다.
야크 똥은 소똥이다. 초식동물이다. 여기서 소는 임금께 올리는 상소의 한 방편처럼 보인다. 임금은 시의 독자다. 너 잘 씻고 있어, 글을 읽는 독자들아 마음을 잘 닦고 있니? 뭐 그런 뜻으로 읽힌다. 오래된 평화는 어떤 비평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글 읽기를 상징한다. 담벼락은 아주 미련하여 어떤 사물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얌드록쵸 호수는 지명이지만 물(구체)을 대변한다. 여기서 물은 생명의 상징이자 시 주체다.
야크 똥은 메주처럼 잘 말라가고 있다. 메주는 콩을 빚는 순수 단백질- 된장, 고추장, 간장 모든 음식에 꼭 필요한 우리의 음식 기초자료다. 시 주체로 보면 없어서는 안 되는 시 객체를 상징한다. 시인은 티베트 문자라고 하고 괄호 안 장문藏文이라 한다. 시인이 보아도 티베트 문자는 이국 문자로 모르는 건 당연지사다. 장문은 숨긴 글이다. 그러니까 시 객체는 알 수 없는 이국 문자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다.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낀 시인이다. 보릿단으로 뾰득뾰득 씻어낸다. 보릿단 히히 재밌다. 필자 또한 저 거친 보릿단처럼 땟국물 벗긴 느낌이 들 정도니 할 말은 없다.
껍질과 속살 사이 유채밭 경작지가 자꾸 넓어진다. 시 객체와 주체 사이 유채, 유채는 역시 초식이며 마음 수양의 길 그 경작지가 된다. 목판본 바람까지 밀봉되었다. 목판은 목판이 아니라 음식을 담아 나르는 나무 그릇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목판木板 말이다. 담장은 담牆으로 보는 것보다는 淡粧, 수수하며 엷게 화장을 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다. 온돌처럼 데워졌다. 역시 재밌는 표현이다. 따끈한 돌처럼 다가와 보고 있으니까
어린 시절 돼지 축사에서 맡았던 더럽고 역겨운 냄새는 오해였던 거야, 맞는 말이다. 시를 모르는 시절은 왜 이런 글을 쓸까 하며 의아해하며 읽었을 것이다. 지금은 쓰는 자도 라마 같은 수도승이며 선생을 좋아하는 글 꾼도 수도승처럼 마음을 닦고 있다. 草根木皮, 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뜻으로, 맛이나 영양 가치가 없는 거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무 타는 냄새와 닮았다. 오늘도 시인께서 제공한 목마를 타며 티베트 여행을 간접적으로나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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