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 =문혜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외치
=문혜진
외치, 눈과 얼음의 골짜기에서 발견된 냉동미라, 5,300년 전 석기 시대, 눈 덮인 대평원, 붉은사슴 발자국, 키 165cm, 몸무게 38kg, 45세 남자, 곱슬 머리카락, 갈색 눈, 곰 가죽 모자, 염소 가죽 정강이받이에 풀잎 망토, 뼈에 도끼날을 묶어 만든 구리 도끼를 차고, 왼쪽 쇄골 아래 동맥을 관통한 돌촉 화살, 얼음벽에 떨어지는 우렛소리, 쿵!
눈 덮인 아파트 화단, 부러진 나뭇가지, 눈 위에 검게 누운 시체, 번지는 핏물, 구급차 사이렌 소리, 카메라 플래시, 멀리 6차선을 가르는 제설차 경적 소리
얼띤感想文
주말이다. 여러 일을 마치고 언뜻 자리에 앉아 고른 시집에 무심코 읽은 시 한 수, 글을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위 시는 두 개 단으로 문장을 이루고 있다. 하나는 1991년 9월 19일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 사이 알프스산맥의 외츠 계곡에서 발견된 약 5300년 전(청동기 초기) 중년 남성의 자연 냉동 미라다. 미라의 상태를 보고 여러 가지 정황을 살필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꽤 높다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시를 보고 현시점을 논하는 작가의 심정을 잘 묘사한 것으로 읽었다.
시제 외치는 발견된 미라를 두고 임의로 붙인 이름이기도 하지만, 외치는 外痔나, 한뎃뒷간으로 읽히기도 한다. 눈 덮인 아파트 화단은 아파트처럼 칸칸 빈 원고지를 상징한다거나 부러진 나뭇가지 이미 빚은 사고, 시체 핏물은 막 진행한 어떤 상태처럼 읽히기도 하고 사이렌 소리는 자아를 구급한 시간적 정황, 카메라 플래시 다시 조명을 해보며 멀리 6차선을 가르는 제설차 경적, 6이라는 숫자에 언뜻 내 몸을 가르며 한순간 막을 수 없었던 토한 신음에 시인께 금치 못할 죄송스러움까지 밀려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