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박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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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없습니다
=박규현
문을 도둑맞았다 태평한 오후였다 해안가로 밀려오는 동물 여러 마리는 거의 죽어 있었고 그중 하나를 데려와 쓰다듬었다 털이 빠지고 앙상해질 때까지 가족이 될 때까지 체하면 손을 따주었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핏방울 그달에도 그달에도 그달에도 떨어졌다 욕실 타일과 타일의 틈으로 피가 번지면 그 위로 물을 끼얹었고 자면서 피 흘리면 안 되었다 꽤 다정하고 정겨운 모양새로 창밖으로 화재가 난 건물이 보여 구경했다 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구조는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나 출구가 없다는 이유로 이사할 수는 없었다 보증금도 가구도 문도 없었고 여기가 상자였더라면 오히려 명쾌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간을 잘 개어서 놔두면 누군가 수거해 가는 것을 기대할 수도 동물은 입을 벌린 채 여기 이 목구멍을 통해 나갈 수 있다며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줘 어머니와 아내가 필요해 인간이었다면 신고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가족이 안 될 때까지 배를 갈랐더니 희고 빛나는 솜만 가득했다 방의 가장자리에서 동물 여러 마리는 아주 죽어 있었고 한가로운 오후의
얼띤感想文
시인이 말하는 사물事物은 일과 물건 즉 물질세계에 이르는 모든 구체적인 사안으로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는 현실적 부조화에 대한 호소로 보인다. 문을 도둑맞았다. 태평한 오후였다. 사실 문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는 경계점으로 스스로 나갈 수도 있으나 나갈 수 없는 억압적이며 통제적인 자아를 그린다. 도둑 낀 문은 이 사회가 처한 여러 병폐적 사안이겠다. 가령, 일하지 않으면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 여타 처리해야 할 현대인의 문고리는 더욱 나를 압박하고 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은 아니,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어머니가 되고 싶고 아내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한 마리 아니 여러 마리의 유기견처럼 자아 분열적 정신세계를 그린다. 오로지 삶의 희망은 어쩌면 희고 빛나는 솜 가득한 흰 배에 의존적이며 피에서 물로 이전하는 완전한 구체와의 싸움뿐이었다. 여기서 상징적인 시어 몇몇 볼 수가 있다. 솜이라는 시어는 목화씨에 달라붙은 털 모양의 흰 섬유질. 부드럽고 가벼우며 탄력이 풍부하고 흡습성과 보온성이 있다. 물론 이는 사전적 의미다. 솜은 어떤 과장이나 거짓 정보를 부풀리는 데에도 흔히 쓰는 용어다. 우리의 속담에 번갯불에 솜 구워 먹는다는 둥 솜에 채어도 발가락이 깨진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피가 인공적이고 어떤 노력의 산물에 대한 상징적 구체를 뜻한다면 물은 그 반대다. 그르고 걸러 정화된 맑음을 상징한다. 모든 이의 생명수다. 시인이 사용한 가족의 개념은 어떤 기준을 말하며 그러니까 선 안에 들어올 때까지 고뇌다. 작가로서 손안에 들 수 있는 작품은 나를 구제할 수도 있거니와 어떤 출구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그 고뇌의 과정은 욕실 타일처럼 어떤 이질적인 사안으로 완벽한 하나의 욕실적 방을 구현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내가 처한 공간을 잘 개어서 수거해 버릴 수 있는 사인도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실적인 문제는 아득하지만, 그 아득한 세계를 등지며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또 한가롭다는 데 있어 문학은 역시 영 자아 외면만은 아니라는 것도 한몫하는 거 같다. 이렇게 좋은 결과를 빚으니 촉망받는 시인이 될 것이다.
아침 갑자기 동인 선생 한 분께서 올려 주신 시였다. 모처럼 잘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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