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콘크리트를 기른다 양생 양생 할렐루야 거대한 기둥이 살 속 깊이 박힌다 폴리 제 어미를 능욕하는 오 강철 페니스 플라스틱 팰리스 콘크리트 폴리스 떨어져나간 붉은 살점 위로 모래비 내린다 초록 강엔 썩은 태반이 떠내려온다 검은 덩어리가 물컹물컹 증식한다 코로 입으로 밀려들어 와 폴리 숨이 막혀 구멍마다 대량 생산되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바퀴벌레 폴리폴리 매일 태어나는 폴리 폴리는 강하고 폴리는 아름답고 무엇이든 원하는 모양이 될 수 있어 폴리는 아름답고 폴리는 홀리하다 도시는 양생하고 폴리는 영생한다 폴리는 영원히, 폴리하다 물방울 싱싱한 조화는 생화보다 조화로워 온갖 잡새가 날아들고 뒷문 밖에는 폴리의 노래 고래와 거북은 왜 인간의 연안으로 와서 죽는가 구천에 물이 들어 꿈자리가 피로 흥건하나니 우우 우리가 묻은 것들이 스며나오는 구멍 구멍들 구멍은 폴리로 가득하고 폴리는 구멍들을 메우고 얼굴을 다 덮어버린다 폴리 숨이 막혀 폴리 그러나 폴리는 폴리만은 죽지 않는다 죽어도 죽어도 오 이런 죽어지지가 않아 썩을!
얼띤感想文
시제 ‘폴리’는 일종의 효과음이다. 무대의 한 장면을 더욱 고조시키거나 실감케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니까 어떤 고정적 불변 사항에서 피는 가변적인 요소들 그건 곧 삶의 일환이며 홀리 즉 봄맞이 축제처럼 이끄는 작용이다. 도시는 도시都市이자 도시圖示다. 메타포적 어휘로 고정적 불변 사항을 대변한다. 이미 굳은 세계관으로 콘크리트와도 같다. 콘크리트 양생은 한 백 년 족히 간다고 했다. 건축물의 수명이자 문화적 한 시대를 반영한다. 하지만 거기서 피어나는 페니스 플라스틱 팰리스는 콘크리트 폴리스에서 떨어져 나간 붉은 살점, 그러니까 작용에 반하는 부작용의 산물 그건 자지自知이자 그것을 받아 든 보지報知다. 그러므로 모래비처럼 내리는 골목에서 태반胎盤을 부정하며 숨 쉬는 홀리와 같다. 홀리에서 대량 생산한 박테리아 바이러스 바퀴벌레는 양생한 콘크리트에서 변이한 인간적 산물로 구천에 떠도는 영혼이나 다름없겠다. 이는 생화보다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싱싱한 물방울로 명명하기까지 하는데 시인이 보는 눈은 다만 피곤할 뿐이다. 구체가 아닌 것이 구체로 작용하는 구멍의 세계, 태반을 무시하고 찌르는 저 페니스에 대한 항거이자 보지報知임을 개탄할 뿐이다. 빌어먹을 죽지도 않아 이건 젠장 끊임없이 떠오르는 저 구멍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