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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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23-04-04 14:10본문
12월
=최금진
그해 겨울 우리는 이불을 덮어쓰고 잠만 잤다 TV에서 돋아난 털이 바닥에 수북이 쌓였지만 벽 위의 오래된 낙서처럼 즐거웠다 창밖에 소문처럼 몰려오는 눈을 집어타고 우리가 눈 속에 일부러 잃어버린 손수건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한없는 가벼움을 부풀려 그 힘으로 날아가는 눈송이들을 좇아 길을 잃어도 좋았다 귓속으로 동공으로 따뜻한 신음을 쏟는 눈 졸린 햇빛을 불러 아무떼나 잠 속을 들락거릴 수 있었다 우울도 불안도 금세 순한 길가의 밤이 되었다 꿈속에선 베개들이 강물 우리를 떠다니다가 얼어붙었다 품속에 저혈압의 뻐근한 머리를 묻으면 찬찬히 깨지는 살얼음 몽롱한 아침 속에서 우리는 간밤의 꿈을 캐어 억지로 해몽하기도 했다 용서해야 할 일과 용서받아야 할 일들이 빨래처럼 자꾸 쌓여갔고 벽지에 번지는 곰팡이라도 정을 주며 키우고 싶었다 애벌레처럼 딱딱한 아침을 조금 갉아먹으면서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월급날 슈퍼에서 라면 한 박스를 사고, 담배를 사고 따로 돌아누워 콜룩거렸다 가끔은 그렇게 두 개의 불 꺼진 방이었다 스위치가 없는 화장실에 앉아 몰래 흐느끼기도 하면서 행복하다, 행복하다, 사라지고 없는 얼굴을 씻고 또 씻었다
얼띤感想文
12월, 6, 70년대를 살아온 세대들은 안다. 가난이 무엇인지? 그해 겨울, 동지가 있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안을 구제할 수 있는 그 어떤 동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문명의 맛을 느낀 우리 언제 그런 시기가 있었느냐는 듯 잠시 잊은 시간 속 여행을 일깨운 시 12월, 손이 쩍쩍 갈라지고 질질 흐른 코 고드름처럼 얼어도 눈싸움은 참 재미있었다.
시는 두 부처의 표상이다. 하나가 피상적으로 드러내는 한 일상의 과정으로 가난을 얘기했다면 다른 하나는 그 가난을 이겨내며 내면의 성숙으로 다지는 시의 금자탑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이불을 덮는 일이며 TV에서 돋아난 털이 바닥에 수북이 내려앉는 과정처럼 쓸모없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낙서처럼 즐거울 수도 있고 그러다가 순간 스치는 착상은 안착 같은 손수건까지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 가려움, 지식과 지혜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은 우울과 불안까지 잠재울 수 있는 처방 아닌 한때 치료였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꿈속은 베개처럼 둥둥 떠다니는 언어의 유희적 산물들 그것은 나의 뻐근한 머리마저 식힐 수 있는 일이며 살얼음 같은 그 꿈을 해몽하기도 해서 내 가난을 잠시 씻는 작용으로는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이 일은 한 편으로는 죄책감이었다. 벽지에 붙은 곰팡이처럼 자생한 내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심적 안정으로 기대는 시에 대한 집착은 사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또 용서받고 싶은 시인의 심적 묘사가 들어가 있다.
가끔 두 개의 불 꺼진 방으로 스위치가 없는 화장실에 앉아 몰래 흐느낀 삶을 지울 수는 없는 일 그것을 행복 아닌 행복이었다면 아니 행복으로 치장하고픈 내 삶이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얼굴을 씻고 또 씻으며 그해 12월을 견디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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