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녹진 않았다
얼띤感想文
겨울은 굳음과 죽음을 상징한다. 봄으로 이행하는 과정 속 잠시 쉬어가는 골목이다. 따뜻한 봄을 원한다면 바람을 씹어야 한다. 시는 각가지 바람을 논하는 일이며 그 바람에 취한 구름이자 대놓고 깐 엉덩이다. 그러니까 이 속에 부끄러움 같은 건 없어야 하며 오로지 꿈처럼 해몽과 양치질을 무한 반복한다면 아침我沈에 닿는 상처는 아물 것이다. 아문 일련의 행위와 묘사는 빗질에 긴 머리카락(詩,屎)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을 벽이라 하자, 누가 벽 앞에 서 있는가? 벽을 깨뜨리며 가는 자 검은 안경을 쓰고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이, 나는 다만 벽으로 동네 영화관처럼 순간 지나간다. 눈물도 없고 반성도 없었다. 이해상반이었고 상충이었으니까, 그것을 벌레라 묘사한 시인이 앞에 있었다. 나는 다만, 달과 체스를 두는 것으로 한다. 이상향이 이상향을 기다리며 무의식적 입안에 독 같은 시 인식 부재를 넣거나 나도 모르는 풍경으로 묘사하는 일 거기다가 뭐 하나 송두리째 훑고 지나간 칼자국에 다만 얼어 있을 뿐이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만 저 북극에서 흐르고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숫자들만 이 낭떠러지로 몰려올 뿐이다. 오늘도 햇빛 가득 안아 보지만 나는 여전히 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