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 =고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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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6회 작성일 23-04-06 00:11본문
수육
=고명재
늙은 엄마는 찜통 속에 삼겹살을 넣고 월계수 잎을 골고루 흩뿌려둔다 저녁이 오면 찜통을 열고 들여다본다 다 됐네 칼을 닦고 도마를 펼치고 김이 나는 고기를 조용히 쥔다 색을 다 뺀 무지개를 툭툭 썰어서 간장에 찍은 뒤 씹어 삼킨다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 것, 입속에서 일곱 색이 번들거린다
얼띤感想文
대한운예大旱雲霓라는 말이 있다. 큰 가뭄에는 비의 조짐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운예雲霓는 비와 무지개로 비의 조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운예지망雲霓之望이다. 희망이 간절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삼겹살이 무지개로 치환한 은유를 본다. 고독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삶을 그리는 건 유독 노모만은 아니겠다.
참 편하게 쓴 것 같아도 독자의 마음을 잘 읽었다. 찜통 속에 삼겹살을 넣고 월계수 잎을 골고루 뿌렸으니 그리고 한 마디 한다. 다 됐네. 삼겹살을 먹은 것인가? 수육을 먹은 건가? 물기 쪽 빠진 고기를 들고 회고한다.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 것,
촌 이우재 형님이다. 형님(아들)은 췌장암 걸려 재작년에 죽고 노모만 남았다. 허리 구부정한 노모는 올해 구순九旬을 넘겼다. 나이 들어 적적함도 적적하지만 잃은 아들 생각하면 그 슬픔은 무지개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거 같다.
순旬은 쌀 포勹와 날 일日자 합성문자다. 쌀 포勹는 열 을의 의미다. 농경문화 속 열 개씩 묶은 단위였다. 삼순三旬이면 한 달이었고 말을 묶어 표현한 것은 물을 순詢, 따라 죽는 일은 순장殉葬이며 무늬가 다채로운 것은 실 사변을 두어 현絢이라 했다. 탐부순재貪夫徇財 욕심 많은 이 재산이면 목숨도 안 아까워 좇아 입참이순立斬以徇이라 했다. 무리에 본부기 삼아 그 자리에서 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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