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변 집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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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8회 작성일 23-04-10 20:59본문
철로변 집
=김상미
기차가 지나가네요.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집과 똑같은 집, 그 집에서 살아요. 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랑을 나누어요. 기차 바퀴 소리에 놀라 들썩이는 야생 민들레 꽃밭 사이로 날아다니는 자디잔 흰구름은 정말 황홀해요. 나는 황홀한 게 좋아요. 황홀할 땐 어떤 나쁜 생각도 깃들지 못하거든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민들레 씨의 아름다움은 내 애인만큼이나 정말 착해요. 매시간 지나가는 기차처럼 우리 삶에는 머묾보다 떠남이 더 많고, 매번 불타는 그 떠남 속에서 나는 늙어가지만, 나는 내 위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좋아요, 마음이 저리도록 나를 꼭 껴안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푹 파묻히게 하는 내 애인처럼, 삶은 격렬하고 또한 한없이 적막하지만,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인생은 짧아지고 숨막히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서서히 세상에서 멀어져가지만, 매번 다시 오고가는 기차 소리는 정말 황홀해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두 줄로 끝없이 이어진 철로, 내 애인은 철로변 집에 살아요, 내 키보다 큰 야생 민들레꽃들이 서로를 덮쳐 내뿜는 쓰라린 망각 속에 황홀하게 피고 지는,
얼띤感想文
기차는 칸칸 채워가는 채워가야 하는 꿈과 이상 같은 것이다. 그것을 떠받드는 철로, 한 선은 시적 주체일 것이며 한 선은 이를 바라보는 시적 객체다. 서로 마주 보는 상황에서 수많은 애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세계와의 소통이다. 여기서 시인께서 사용한 화백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 실내 창문 앞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인물을 다수 그렸는데, 간결하게 표현된 공간 속 홀로 배치된 인물은 산업화가 한창인 도시인 삶의 이면을 표현한다. 도시화에 따른 외로움의 대변이다. 그것처럼 똑같이 사는 시적 주체의 삶은 소통과 인식의 결여다. 세계는 기차 바퀴 소리처럼 들썩거리며 신음을 내지만 야생 민들레 꽃밭 사이 날아다니는 자디잔 흰 구름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기차 바퀴가 어떤 규격과 규칙에 따른 일률적 행위를 묘사한다면 야생 민들레 꽃밭과 그사이 날아다니는 흰 구름은 불규칙적이며 자유분방한 자연을 묘사한다. 그러니까 어떤 규칙성을 따지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놀이가 좋다. 속박은 다른 어떤 속박을 가하게 되며 이로 인해 밀려드는 피로는 속박을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으니까, 규칙성에서 오는 자유의 박탈은 심장이 터질 것같이 고통만 안겨다 준다. 이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민들레 씨의 아름다움에서 역으로 볼 수 있는 문장이다. 기차를 기다리기보다 기차가 왔으니까 얼른 타야 하는 강제성 가령, 원고 마감일이 오후 2시까지라면 그 원고를 갖추는 모든 일련의 행위에 내 젊음은 없는 것이다. 시적 주체는 그만큼 또 늙어간다. 세상과 교류하며 살고 싶지만, 직업의 한계는 이를 극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수많은 독자 속에 파묻혀 세계가 아닌 세계를 그려야만 하는 그 철로에서,
반대쪽 라인은 지금 이를 바라보며 쓴다.
소위所謂각곡부성刻鵠不成 상류목자야尙類鶩者也, 라는 말이 있다. 소학에 나오는 말로 고니를 새기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집오리 비슷한 것은 어찌 새기지 않을까. 시 감상이 별로 좋지는 않더라도 시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는 되겠다. 흰 구름을 만끽하며 쓰는 집오리의 행복은 뭐라 해도 자유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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