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 =허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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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8회 작성일 23-04-15 19:36본문
사십구재
=허 연
사람들은
옆집으로 이사 가듯 죽었다
해가 길어졌고
깨어진 기왓장 틈새로
마지막 햇살이 잔인하게 빛났다
구원을 위해 몰려왔던 자들은
짐을 벗지 못한 채
다시 산을 내려간다
길고양이의 절뚝거림이
여기가 속계(俗界)임을 알려주고
너무나 가까워서 멀었다, 죽음
다음 세상으로 삶 말고
또 무엇을 데려갈 것인가
개복숭아꽃이
은총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얼띤感想文
김소월 하면 ‘진달래꽃’이 생각나듯이 시인 허연 선생을 떠올린다면 ‘얼음의 온도’가 생각난다. 잠시 시를 옮겨 보면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너에게 빠지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詩 얼음의 온도 전문全文이다. 시인의 직분과 시에 대한 사랑이다. 시는 여러 일의 표상이니까.
제祭와 재齋의 차이는 유교적이거나 불교에 있다. 죽음 사람을 기리는 행위다. 시제 ‘사십구재’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불리는 혹은 49일 만에 올리는 마지막 재식, 그만큼 다음 세상을 간절히 바라는 시에 대한 축원이 아니고 뭘까,
사람들은 옆집으로 이사 가듯 죽었다. 옆집, 집이라는 공간은 삶의 휴식 공간이자 죽음의 공간이다. 그 옆집으로 이사 간 이웃을 보노라면 필자 또한 짐을 꾸리며 사색을 즐기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길고 깨어진 기왓장 틈새로 마지막 햇살이 잔인하게 빛났다. 여기서 기왓장의 표현이 참 재밌다. 기와의 낱장이다. 집 전체를 다 덮고 있는 그 한 장, 말하자면 시집 속에 그 한 단어, 대들보 썩는 줄 모르고 기왓장 아끼는 격이라는 우리의 격언도 있듯이 핵심은 잊어버리고 어리석은 일만 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짐을 벗지 못한 채 다시 산을 내려가는 격이다. 그것은 길고양이의 절뚝거림으로 속계를 대신한다. 길고양이는 시의 객체다.
너무나 가까워서 멀었다, 죽음 여기서 다시 얼음의 온도와 불의 온도를 감지한다. 그 온도를 잊는 일 시의 고체화固體化 시가 되기 위한 사색의 일변 참 멀고도 깊다. 끝끝내 끄집어 올리려는 저기 저, 기와 한 장 이웃집 대들보 하나 잠시 흔들거렸다.
이승에서의 손짓 여기 이 개복숭아꽃 하나 곱게 피며 깨진 기왓장 넘어 잠시 은빛 찬란히 괴며 보는 사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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