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성당 친구들이랑 시내를 수십 바퀴 돌며 놀았다 깔깔거리며 거들먹거리며 주억거리며 25시레코드를 지나 롯데리아를 지나 버거킹을 들러 보세 옷 가게를 스쳐 우체국에 옆에 우다방 공중전화박스를 지나 궁전제과를 건너 삼복서점 들러 에일리언노래방에 갔다가 무등극장에서 놀았다 수학선생은 시내에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의 바지런한 발자국이 전에 닿은 발자국을 희미하게 지우고 우리가 묻힌 발자국은 우리 뒤에 땅에 설 발바닥들에 의해 또 지워질 테지만 내 발바닥이 지워지지 않는 바닥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고 의아할 만큼 사람이 많이 죽었다지, 전일빌딩 앞에서 죽은 수학 선생의 친구 얼굴이 그러니까 조선 놈의 얼굴이 그가 죽기 직전 끌려다니던 길에서 그가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가보려고 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남긴 발자국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우리가 다져지는 중이다 무참한 일상이고 슬픔이고 다 합쳐서 이상한 자랑인 길바닥에 발바닥을 문대면서
얼띤感想文
시인은 시의 창의성에 관해 묻고 있다. 한때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싶어서 시내 그 중심가를 몇 번이나 돈 적이 있다. 그것도 모하비를 끌고 그 비좁은 도로를 그 한 그릇 먹겠다고 구태여 질질 끌며 아니 그 돼지국밥에 끌려간 것이었다. 예전 무역회사 다닐 때 점심시간에 잠시 나와 먹었던 그 기억에 두부는 내내 썩고 있었다. 출출한 속을 말끔히 지운 기억은 주말朱抹이나 다름없었다. 돼지국밥이라는 단어 하나가 깨끗해졌으니까 물론 이러한 경험은 진솔한 것이지만, 예전에 일기에도 쓴 기억도 있지만, 시로 쓴다는 것은 물린 일이 되어버린다. 시내에서, 시의 표상으로 우뚝 서 있으니까 명인은 수학 선생이자 조선祖先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사색의 골목에서 신비로운 일 하나 의아할 만큼의 그 일은 어떻게 찾는가? 그래도 역시 심장적구尋章摘句다. 심尋은 돼지머리 계彐와 장인 공工 입 구口 마디 촌寸으로 이룬다. 장인 공工은 왼 좌左를 상징하고 입 구口는 오른쪽 우右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머리 부분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조금씩(寸) 헤치며 나가는 길 그것이 찾는 것이다. 그 길은 구고심론求古尋論이어야 할 것이다. 예를 찾아 의논하고 고인을 찾아 토론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자랑할 만한 일은 하지 않겠다. 시는 시인께서 말한 저 무등극장에서 논 것만도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