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없는 질문 =천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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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4회 작성일 23-04-19 21:14본문
여기에 없는 질문
=천수호
사랑이 좋을 때 수선화에게 사랑을 물은 적 있다 꽃의 죄는 대답이 샛노랗다는 것 누워 있어서 죄가 더 많이 보이는 날이면 사랑은 벌써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랬다 천리도 아니고 만리도 아닌 아득한 길을 노란 꽃으로 흔들리며 가는 네 모습을 끝까지 봐주는 것이 사랑이라 믿는 게 아니랬다 그땐 웃을 수 있었다 그 색깔이 거기 있다고 믿었으니까 꽃잎에서 시작된 뒤척임이 하루를 구근으로 뭉친다는 바람의 이야기는 믿을 만 했지만 어찌 색을 두고 흔적 없이 사라질 궁리를 했는지 사랑이 좋지만 않을 때 가만가만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답 대신 한 두 장의 풍경만 가만히 보내오고 그것이 색 없는 고궁(古宮)이라 어둡다는 벽돌 사진 한 장도 무심히 끼워 보내오고 천천히 문을 여는 메신저의 반응만이 아득한 기별이 될 때 이런 사실은 사랑을 꽃에게 물을 때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랬다 사랑이라 부를 때가 많았던 그때는 보이지 않던 느린 걸음으로 꽃이 걷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계간 《포엠포엠》 2021년 여름호
얼띤感想文
한 편의 시를 오랫동안 읽은 적 있다. 그것은 그 순간만큼은 사랑이었고 구근처럼 하루를 묵는다. 시를 대면하는 일, 그것은 나에게 사랑과도 같아서 시인은 여기에 없지만, 그가 남겨놓은 이 짤막한 사랑에 이렇게 난삽한 머리를 꿰뚫고 지나며 수선화처럼 샛노란 꽃잎만 영근 시간이었다. 아무런 색깔도 없이 가는 건 정말 죄었다. 이해 없이 덮는다는 것은 색 없는 고궁이며 벽돌 같은 무심한 처사다. 그러니까 가도벽립家徒壁立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벽만 서 있는 일, 집은 집만이 아니라서 마음의 집 또한 고궁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가다듬고 닦고 기름칠에 윤기 나는 회전력, 젓가락도 휠 수 있는 꽃,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이 사랑도 지나가고 있다. 여기에 없는 질문, 하나가 잠시 느껴본 일을
서서히 걸어가는 꽃으로 묘사한다. 위의 시에서 인상 깊은 한 문장을 든다면 ‘꽃의 죄는 대답이 샛노랗다는 것 누워 있어서 죄가 더 많이 보이는 날이면 사랑은 벌써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 노랑을 샛노랗다고 노랑을 한자로 표현하자면 노랑怒浪으로 보아도 좋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무섭게 밀려온 파도처럼 말이다. 이 문장에 죄의 정의를 분명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죄는 양심에 어긋난 행위로 보는 것, 양심은 두 쪽의 마음이다. 한쪽은 누워 있는 쪽을 말하는 것이며 한쪽은 가도벽립家徒壁立 서 있는 쪽이다. 죄가 더 많이 보이는 날은 너와 내가 멀어져 가는 것쯤 시 인식이든 부재든 하여튼, 꽃잎 한 장 남겨본 구근은 여기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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