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로 집을 짓는 나무 / 이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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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9회 작성일 23-04-20 16:45본문
(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 김포신문 2023.04.21.)
햇살로 집을 짓는 나무 / 이원숙
겨울나무는 남쪽으로 창을 낸다
창을 열면 남쪽에서 날아오는 새들이 처음 만나는 가지 위로
파릇한 새순과 어린 햇살을 물고 온다
한 줄기 기운과도 같은 햇살이 밝아 오는 나뭇가지로 집을 짓고
잎사귀 커튼이 되어 찰랑거리고 반짝인다
한 번도 노래하지 못한 빛과 바람의 입술을 불러온다 휘파람이 되어 휘리리 휘이
산벚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 직박구리의 빈궁한 집과 동박새의
신혼집 한 평 남짓 보금자리를 만들고 빛의 열매들을 잉태한다
새들의 울음으로 만들어진 나무의 몸 온몸에 귀를 매달고 있다
다 자란 새들은 나무에게서 날갯짓을 배우고 남쪽 창으로 날아간다
얼마나 많은 새들이 소리의 첫 날개를 달고 날아갔을까
겨우살이 내내 숲을 읽었다 공기와 온도를 섞어 햇볕과 그늘이
교차하는 무늬를 짰다
겨울을 견딘다는 건 햇빛이 밝아 오는 남쪽으로 쉼 없이 창을
내는 일이다
(시감상)
새들이 돌아오는 계절, 꽃이 귀환하는 계절, 겨우내 품었던 열망이 꽃망울이 되고 꽃대궁에 맺힌 꽃들이 활짝 개화한다. 까치들이 둥지를 신축하거나 보수하고, 꿀벌들이 꽃씨를 나르는 분주한 시간이 봄이다. 하지만 짧다. 봄, 가을이 짧아지고 겨울, 여름이 길어진 기후변화가 봄을 시샘하는 것 같다. 그래도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세상의 온갖 아픔이 치유되는 듯하다. 남향집에 따뜻한 온기가 종일 들어와 몸을 데우는 소파에 앉아 차 한 잔과 당신의 생각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내가 봄이 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계절이 봄이라는 시인의 말이 겸손하고 따뜻하다. 내 빈 가슴에 남쪽으로 창을 내보자. 적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이원숙 프로필)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공저 시집<빛에 궁굴려진 계명>, <너에게로 건너가는 시간> 외
이원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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