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천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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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회 작성일 23-04-24 22:08본문
각성
=천서봉
어느 순간 그릇이 손을 이탈하여 깨어지는 일,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 나는 비로소,
오늘까지 보던 것을 이제 오늘로 끝내는 일, 부레 없는 물고기가 되어,
돌아보면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나의 시작이자 끝이었다고, 그리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싶던 그릇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그런 온순한 일 따위는 아니고
가령 그것은 어둔 하늘을 반으로 가르는 번개의 일, 손목이라도 그어,
불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공터에 모여 비를 맞고 있다 어른들이 모두 사라지기를, 나는 여러 번 기도했었고 그런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오늘, 나는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 어쨌든 비는 구름의 각성
*월간 “시인동네”2019년 3월호
鵲巢感想文
이 시에서 중요하게 와닿는 시어가 있다면 비와 각성이겠다. 비 우雨로 표현해도 좋을 듯하고 아닐 비非나 슬플 비悲로 읽어도 무관하겠다. 마치 상대를 보고 있다. 이건 아니야 하듯, 우雨 오른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어다. 시가 좌측이라면 현실은 늘, 우가 되니까. 우를 생각하면 벗友이며 만남遇이며 또又라는 중복적인 의미와 근심憂이자 의심이며 짝偶이자 어리석음愚이 있는 곳 그러니까 산 생물이 기거宇하는 아직도 가능을 대변한다. 그러면 좌측은 죽음의 공간이자 별의 세계관을 갖는다.
각성覺醒은 배우면서 실지 보는 것이며 거기서 눈이 번쩍 깨는 것을 말한다. 물론 한자의 파자로 설명한 것이다. 깰 성醒을 보면 술을 담는 그릇 유酉에 별 성星의 합자다. 유는 옆에 물 수氵변을 더해 술 주酒로 더욱 명확히 한다. 유酉는 닭 유酉로 읽기도 하는데 십이지지(열번 째)의 하나로 닭을 상징한다. 모양이 술독처럼 생겨 술 담는 그릇으로 대신해서 여러 글자가 나온다. 짝 배配, 삭힐 효酵, 추할 추醜, 독할 혹酷, 의원 의醫, 취할 취醉 등이 있다. 모두 술과 관련하여 생긴 문자다.
그릇의 모양을 따 만든 문자를 하나 더 든다면 명皿을 들 수 있겠다. 그릇에 가득 담은 어떤 내용물이 줄줄 흐르는 모양까지 아주 상세하게 표현한다. 여기에 삐침 별丿을 더하면 피 혈血이다. 고대는 농경문화였다. 소는 농사에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러므로 물건 물物에 소 우牜라는 부수가 들어간다. 그 소의 목을 뚫어 피를 받아 마시곤 했다. 요즘은 산 소牛의 피血를 짜 마시지는 않는다. 선짓국은 소피가 소재로 다룬 대표적 우리의 음식이다. 그 피가 그릇에 뚝뚝 떨어지는 모양 피 혈血이다.
어쨌든 잠시 머문 구름 하나가 비를 뿌리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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