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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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23-04-26 21:17본문
반반
=김경인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은
가장 아름다운 조합
모가지와 다리가 평등하게 잘려 버무려지고
바싹하게 튀겨져 목구멍 너머로 꿈결처럼 사라지는 날개들
반반은 내가 아는 최초의 얼굴
자정에 얼굴을 가리면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라는
반반은 내가 아는 가장 유쾌한 비밀
오른뺨은 어둠으로
왼뺨은 희미한 빛으로 서로를 향해 아코디언처럼
부풀다 터지는 울음 주머니
반반은 그러니까, 제법 슬픈 주름
내려가도 끝이 없는 계단
오른쪽과 왼쪽 사이좋게 닳아가는 무릎들
1월과 7월의 달력에서
따로 따로 죽은 채로 발견되는 너무 작은 신들의 이름
정성껏 고를수록 실패하는 선물들
그러니까 반반은
내가 출근 할 때 두고 오는 그림자들
너는 정말 시인 같지 않아,
동료들이 이런 말로 나를 칭찬할 때
나대신 술 마시고 욕을 하고 울며 시 쓰는 하찮은 마음들
한 짝은 고독 쪽으로 한 짝은 환멸 쪽으로 팽개쳐버린 구두
반반하게 낡아가는 심장들
너는 정말 시인 같지 않아,
내가 무심코 시집을 펼칠 때
월간 “현대시”2020년 2월호
鵲巢感想文
시 내용을 가볍게 정리하자면,
가장 아름다운 조합은 반반이다. 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 그 하나씩 잡고 먹을 때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처럼 그렇게 지낸 적은 내가 세상을 처음 알 때 그 얼굴이었다. 지금은 모가지 간당거리며 다리까지 잘려버린 현실에서 한쪽은 여자처럼 한쪽은 남자처럼 살아야 하는 주부 아닌 사회인, 반반은 희미한 빛과 어둠의 조화 속에 오늘도 걷는다.
세상은 어찌 하루씩 더할수록 주름만 깊고 헤어나고자 노력하면 더욱 빠져들어 가는 겨울과 여름의 반복 결국 무릎만 다 해진다. 무엇하나 신중하게 고르고 거기서 고른 것이 있다면 곧 실패한 선물처럼 받아 들고 다시 머리 싸매며 공부 아닌 공부를 한다. 그렇다고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나가고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뒤에 남는 그림자만 자꾸 나를 붙잡는다.
한쪽은 고독으로 한쪽은 환멸로 사실 모든 것 포기하고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세월은 지나 가버렸고 다 낡은 심장처럼 숨만 가쁘다.
하품 흠欠이라는 한자가 있다. 입을 크게 벌린 입 모양을 한다. 하품은 몸속에 산소가 부족하여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므로 부족한 상황을 대변한다. 흠이 생겼다는 그 흠, 흠결欠缺은 일정한 수효에서 부족함이 생긴 것이다. 이에 파생되는 한자가 몇 있다. 버금 차次가 있고 바랄 欲과 욕심 욕慾이 있으며 마실 음飮과 속일 기欺, 공결 할 흠欽이 있다. 모두 부족한 그 무엇에서 발생한 문자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빨리 이루려고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느긋하게 바라보며 있는 자세, 세상의 변화 그 초점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하여튼,
시제 ‘반반’은 어떤 부족한 생활의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는 한 시인의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반반한 길이 아니라 만만치가 않다. 사실, 시인만 그럴까, 이 세상 사는 모든 이의 대변 같기도 한 현대인의 참상을 잘 보여주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험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구차한 돈의 예속에서 결국, 더욱 빠져드는 사회의 늪, 커피를 다루는 누가 물을 것이다. 당신은 진정한 커피 인이 아니야, 그러면 당신은 커피의 세계를 얼마나 아느냐? 이 치열한 경쟁에 대안이 없는 대안을 팔며 한 세계를 구제하려는 몸짓 같은 것이 반반에서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해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 일을 줄이고 관계를 더욱 줄여나가는 일, 조금 외롭더라도 조금 부족하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그 길 제대로 다룰 줄 안다면 한 세계가 무너져도 허허 웃고 지낼 수 있음을 누가 알까, 이렇게 마음을 다듬고 있으면 하루가 조용하고 안심이다. 그러니 그 하루가 한 인생이라 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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