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세계 =서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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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세계
=서영처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장미
울 때마다 송이송이 향기를 뿜어내는 장미
갓 태어난 장미에게 우유를 먹이는 동안
허벅지를 찍고 등으로 기어올라 잠 속을 기웃거리는 장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장미는 혀를 내밀어 내 눈물을 핥았다
가시 돋힌 팔을 뻗어 얼굴을 어루만졌다
골똘한 생각에 잠긴 골목을 지나 다시 생의 여름이 온다고
자꾸만 옆구리로 터져나오는 꽃들
야옹, 울 때마다 장미가 피어난다
생선을 발라먹고 가시를 토해내는 장미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는 장미
끝없는 갈림길이 있는 정원에서
계속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울지 않는 황량한 세계에 닿았다
가이포크스 가면을 쓰고 나타나 가시 돋친 말을 뱉어내는 장미
입안에서 벌떼가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눈시울 위로 타오르는 장미
그 많은 눈시울 아래로 잠드는 무덤
기억의 지층 아래 묻힌 쓰레기를 파내 장미를 접는다
악취를 풍기는 장미
담벼락마다 장미가 피어오른다
돌연 줄을 풀고 햇살 속으로 사라지는
해마다 넌출넌출 새끼들을 물고 오는 장미, 망각의 장미
월간 「현대시」 2020년 8월호
얼띤感想文
장미의 꽃말은 빨강일 때는 열렬한 사랑, 흰색일 때는 순결함과 청순함, 노랑일 때는 우정과 영원한 사랑이라고 한다. 장미를 한자로 표현하면 장미薔薇다.
장미 장薔을 본다. 식물 중에서도 인색한 꽃이다. 물론 파자로 본다면 풀 초艹에 아낄 색嗇이다. 아낀다는 것은 인색하다는 뜻이다. 꽃방까지 겹겹 쌓인 꽃잎이 많아 만든 문자다. 아낄 색嗇을 보면 흙 토土에 사람 인人이 둘, 돌 회回로 이룬다. 아끼는 것은 사람이 모여 회전하는 모양을 이룬다. 마치 탑돌이 하듯이 무엇을 비는 형국이다. 인색吝嗇과 탐색貪嗇이 있다.
장미에서 미薇는 풀 초艹와 작을 미微로 이룬다. 작을 미微는 천천히 갈 척彳, 뫼 산山, 하나 일一, 안석 궤几, 따라갈 치夂로 이룬 글자다. 미微는 오솔길이라는 뜻도 있어 안방에서 산까지 오며 가며 걷는 그 오솔길을 상징한다. 지금의 미微자는 작다는 의미에서 정교함으로 주로 쓰인다. 미시적微視的, 희미稀微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뫼 산山은 목표치를 하나 일一은 경계를 안석 궤几는 안방을 상징한다.
장미의 한자음에서 풀어보았듯이 장미의 세계는 안방에서 산으로 걷는 산책과도 같으면서도 마치 탑돌이 하듯이 아끼는 세계를 반영한다. 이는 시적 세계관을 말하며 여기에 몰입한 과정은 또 하나의 세계관을 몰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시인께서 표현한 문장 하나가 참 재밌게 닿는다. ‘장미에게 우유를 먹이는 동안’ 마치 귀여운 손자를 끌어 안 듯 아끼는 장면이다. 우유의 색채를 보면 물론 종이를 제유한 시어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생선生鮮에서 오는 팔딱거리는 느낌과 그 느낌을 발라먹는 어두운 그림자를 연상케 한다.
가이 포크스는 영국 제임스 일세 때 일어난 화약 음모 사건의 가담자(1570~1606)다. 결국, 이 사건은 발각되어 현장에서 피살되거나 처형되었다. 여기서 발각發覺에서 발각脖角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시로 포장한 오솔길 그것은 좀 더 장미의 세계에 가까이 가는 행위다. 입안에서 벌떼가 쏟아져 나온다. 벌떼는 봉군蜂群이며 봉기蜂起다. 의병이 봉기하다 할 때 그 봉기다. 관의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민의 중심이다. 벌 봉蜂은 민民을 상징한다.
눈시울은 눈꺼풀의 다른 말이며 검瞼이다. 눈 목目에 다 첨僉으로 이룬다. 다 첨은 여러 입과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 많은 사람을 내포한다. 눈은 핵심이며 표상이다. 그러니까 눈시울은 시의 단면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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