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예찬*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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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0회 작성일 23-05-04 23:05본문
바닥 예찬*
=박형준
바닥에는 시계와 제국이 있다
바닥에는 이동하는 사막이 있다
바닥에는 은하수나 성운이 있다
바닥에는 아이들 그림이 있다
바닥에는 벌레들이 기어가다가
남겨놓은 흔적이 있다
땅바닥에 반쯤 처박힌 채
녹슬어가는 부푼 못대가리 곁에서
죽은 잠자리의 날개를 파먹는
개미들의 행렬이 있다
소년 때는 십오도 각도로 하늘을 보며 걷거나
반대로 십오도 각도로 땅을 보며 걷는다
흠씬 누군가를 두들겨 패거나
흠씬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거나
둘 중 하나뿐
소년 때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소년 때는 하늘도 바닥
땅도 바닥
손도 바닥
하늘바닥 땅바닥 손바닥에
세상에 없는 것들만 올려놓거나 내려놓거나
때로는 움켜쥔다
성년이 되면 하늘은 사라지고
땅바닥 같은
손바닥만 남는다
그리고 바닥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절망한 사람에겐 더 큰 바닥으로 나타난다
바닥은 바다
수천 미터 심연이 있다
*장 뒤뷔페의 말.
계간 「시작」 2018년 가을호
얼띤感想文
夜深無禮며 九重深處다. 바닥을 보면 또한 積水成淵이다. 그러나 바닥은 바다와 ‘ㄱ’의 차이 거기에서 절망은 온다. 절망은 더 다듬을 수 없는 단계거나 더는 볼 일이 없는 마당이다. 시계와 제국으로 점철된 바닥에는 역사가 있다.
역사歷史, 밥(禾)을 먹고 밥(禾)을 먹은 그 시점에서 묶은 변천이거나 발전이거나 하는 것들 온전한 울음이 있는 곳 바닥. 이동하는 사막은 바람이 분다. 십오도十悟道의 각도로 쌓거나 죽거나 생성에서 소멸로 가는 ‘ㄱ’이 있다. 말하자면 곡괭이다. 바닥이라는 밭을 일구며 생활한 생활의 필수품처럼 홀연히 날아간 물기 그 속에는 늘 사막만이 존재한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태양과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은하수나 성운이 있는 자리는 바닥이다. 바닥은 양 떼들이 출몰하고 초원의 말 떼가 뒤엉킨 곳, 마치 아이들 그림처럼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에 시계와 제국은 있다.
껌처럼 낀 바닥에는 두들기며 쑤셔 넣는 박자가 있다. 그 박자 속에는 막자가 올려다보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리며 온갖 흔적이 새 나오는 이 막막한 사정에서 어찌 수습할 수 없는 녹슨 기개와 절개만이 단련을 잃은 채 흩날리고 있었으니 가히 개미의 행렬이라 할 수 있겠다.
죽은 잠자리의 날개가 무거울수록 더욱 가라앉는 바닥에는 죽은 잠자리의 웃음이 있고 죽은 잠자리의 울음이 있다. 녹슬어가는 부푼 못대가리 곁에는 다 슨 녹이 오해의 눈빛으로 주먹을 날리며 뜻하지 않은 사고를 부르기도 해서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거기서 십오도의 각도로 살짝 비켜 문을 열어보아라, ‘오른쪽을 봐, 오른쪽을 보란 말이야.’ 결국, 보고 말았던 그 현장에서 나체가 나체를 바라보며 분홍빛 사건을 욱여넣고 있었다. 성년이라 할 수 없는 바닥에서 난처가 처분에 맞은 둘레에 지울 수 없는 동공을 열었으니 절망은 가볍다고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바닥은 더 내려갈 바닥이 없고 바닥을 부를 수도 없는 일 수천 미터 심연에서 다 젖은 울창한 숲과 끈적한 병력만이 烏合之卒로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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