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가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는 낡아빠진 러시아의 한구석. 수시로 정전이 되는 체스판 위에서 12명의 사도들이 죄와 벌을 말한다. 분노한 사도와 눈물을 흘리는 사도와 겁을 집어먹은 사도들이 자기식으로 새의 운명을 논한다. 새는 먼 데서 입에 칼을 물고 모스크바로 날아왔었다. 체스판 위에서는 교사 같은 사도와 복서 같은 사도가 대결을 벌인다. 돈을 나중에 쓰자는 사도와 지금 쓰자는 사도들이 양보 없이 다툰다. 새는 여전히 그들의 머리 위를 날고 전등은 끊임없이 천국과 지옥을 번복했다. 체스판 위에선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도 오도 가도 못 하는 새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절벽 위에 서는 일이 있다. 절벽에 서본 사도들 새를 풀어 주기로 결심한다. 여전히 백열등은 낡은 러시아처럼 깜빡였고.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 2007년작
鵲巢感想文
새 한 마리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한구석을 꿰차고 있다. 새 한 마리는 시의 객체다. 물론 니키타 미할코프의 작품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시를 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러시아라는 단어가 데칼코마니고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지만 수도修道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적 주체를 대변한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체스판, 생각이 오락가락하며 떠올리는 글자판을 상징하며 十二名은 완벽을 두고 다투는 시의 객체와 주체를 상징한다. 십은 완벽성이다. 사실 십을 십十으로 혹은 십辻으로 보아도 크게 손상은 없을 거 같다. 완벽에 가까운 것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거나 사방팔방 교차로와 같은 마음의 분산을 상징한다. 이 부분을 읽으니 조선 개국 시 제2차 왕자의 난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박포의 난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난은 공신 녹봉에 불만을 품은 박포와 회안군懷安君 방간芳幹과 비 오는 날 대청마루에 앉아 바둑을 두면서 발단이 되었다. 훗날 태종으로 즉위한 정안군靖安君 방원芳遠에 의해 진압되어 실패로 끝났지만, 시상이 언뜻 떠오르기에 써본다. 사도는 사도使導로 보는 게 좋을 듯싶다.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심부름꾼이자 생각의 균형, 즉 죄와 벌을 논한다. 양쪽 마음에 어긋남이 죄라면 양심에 우러난 봉기蜂起는 벌이다. 그러므로 분노거나 눈물이거나 겁을 먹는 마음은 최소한 있어야겠다. 그것은 시를 두고 배향하는 마음이다. 교사와 복서는 교사敎唆와 복서復書로 보는 것이 좋겠고 돈을 나중에 쓰자는 것은 장미처럼 꽃방에 드는 여러 길 겹겹 쌓은 꽃잎, 그것처럼 인색함이며 지금 쓰자는 것은 사치겠다. 사치도 여러 의미로 닿는다. 절벽 위에 서는 일 그것은 기企다. 사람 인人과 발 지止로 이룬 글자지만 낭떠러지 앞에 선 어떤 돋움이자 바라보는 일 그러므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하루가 간당거리는 목숨인 것을 백열등白熱燈은 오늘도 깜빡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