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원에서 =김상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세설원에서
=김상미
방향도 방향감각도 없이 비가 내린다 내 눈 속에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산이 젖고 들판이 젖고 마을이 젖고 오늘이 젖는다 이별의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 어제는 오늘 갑자기 이렇게 멋진 비가 내릴 줄 알았을까? 9월의 어느 날,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는 예술도 역사도 사랑도 새로움도 없다 덧없음, 덧없음만이 광활하게 아주 잘 표현된 문장들만이 주룩주룩 대기를 적시고 있다 아낌없이 멋지게 나를 씻어내고 있다
鵲巢感想文
설니홍조雪泥鴻爪,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녹으면 땅은 진흙이다. 진흙 길 위 기러기 하나 그 땅 밟으며 나름 자국을 남긴다. 그러나 그 자국 얼마나 오래갈까? 인생 덧없음이요 희미한 옛 추억을 그리는 마음이 설니홍조雪泥鴻爪다. 기러기 또한 데칼코마니다. 옛사람은 사자성어 하나만 보아도 시적이다. 여기서 수壽라는 글자도 지나간다. 전에 ‘문어=강빛나’에서 쓴 적이 있다. 인생 끝에 이르면 선비적인 마음을 갖는 일, 명예라 하지만 구태여 드러냄이 아니라 내면의 안정에 기거함이 오히려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부질없는 목숨 부지扶持함이다. 윤휴의 말이 언뜻 또 스친다.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 구태여 죽일 필요까지 있는가?’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멸한다. 부질없고 덧없음이요. 거저 세설원처럼 하루 마음 깎듯이 씻고 씻는 그 하루, 잇고 이음이 마냥 좋은 것을
洗雪은 雪辱이다. 부끄럼을 씻는 일이다. 얼굴을 닦으려면 먼저 물을 대어야 한다. 거기서 나온 한자가 세洗다. 물 수氵변에 먼저 선先이 합쳐 씻을 세洗가 되었다. 세수洗手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