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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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2회 작성일 23-05-11 22:58본문
민화
=장석남
햇빛이 창을 넘어와 방 안에 넘실넘실 차게 되면 얽은 집은 으드득거리며 뒤틀어댄다. 벗어놓은 옷가지, 앉은뱅이책상엔 나의 움직임들이 먼지가 되어 뽀얗게 앉고 마당의 물 호스가 얼어붙는다. 남쪽 잣나무숲 사이로 햇빛은 잘게 부서져내린다. 흰 뺨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간혹은 뒤돌아보며 내리막길을 걸어내려간다. 씰룩이는 어깨 위의 햇빛 무리, 나는 문득 그 위에도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얼띤感想文
비 내린 후의 세상은 온갖 잡초의 세상이다. 늘 그렇게 오가든 집 마당도 봄날 마당 한구석은 사람이 없으면 잡초로 붐빈다. 불과 며칠 되었다고 틈 삐져 오르는 풀색을 보면, 놀랄 만한 일이지만 그건 다만, 무관심이며 나의 게으름일 뿐이다. 보드라운 손으로 풀을 잡아 당겨보면 안다. 풀들도 나름대로 가시가 있다는 것, 제 땅도 아니면서 제 땅이라 여기며 생명 부지하는 줄기를 당기면 앗 따끔하다.
소생蘇生과 환생還生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죽음 그 이후의 세계, 햇빛은 늘 창을 넘나들고 방은 얽은 것들로 뒤틀린다. 앉은뱅이책상, 개선광정改善匡正이다. 새롭게 잘못을 고치고 바로잡는 일, 죽으면 다 바로잡아 가는 것임을, 그건 산 자의 몫이다. 목숨을 부지하며 끝끝내 붙들고 있는 이 기둥 같은 세상을 다시 또 바르게 잡아가려는 생명력이다. 잣나무 숲, 침엽수針葉樹 그사이 비집고 오는 햇볕은 참 따스하고 아름답다. 처절한 삶의 애환 속에 자연의 멋은 차마 눈물겹다.
한 마리 고양이처럼, 오늘도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거닌다. 씰룩이는 어깨 위의 햇빛 무리, 소의 멍에다. 짐은 다소 무겁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다 벗은 게 아닌 삶에 대한 소穌, 물고기 하나와 벼 한 톨 뜯고 씹는 게 차마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나의 얘기이자 보잘것없는 氏에서 民을 대표한 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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