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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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6회 작성일 23-05-21 22:43본문
얼굴
=이준규
반포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남산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왜가리는 멀어져갔다. 명동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통인동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직박구리는 횡단했다. 부암동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수색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잿빛개구리매는 선회했다. 공항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탈랑스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다. 깨새는 창턱으로 몰려왔다. 겨울이었고 여름이었다. 가을이었고 봄이었다.
崇烏感想文
얼굴은 시에 대한 그리움이자 나에 대한 존재의 인식이다. 반포와 남산 그리고 명동과 통인동에서 부암동과 수색에서 좀 더 나아가 공항과 탈랑스에서도 그 얼굴을 본다. 그러니까 지울 수 없는 얼굴이며 내가 살아 있으면 떠오르는 존재다. 그 존재는 분명 내가 근접할 수 없는 막막한 이상이거나 그 이상에서 크게 데였더라면 가슴에 큰 상처거나 사랑이거나 지울 수 없는 얼굴이겠다. 왜가리, 직박구리, 잿빛개구리매, 깨새는 모두 새의 일종이다. 하늘을 나는 존재다. 새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틈이며 얼굴에 비하면 그 가치가 좀 떨어진다. 그 새는 모두 멀어져 갔거나 횡단했으며 선회했다. 시 종단부에 이르면 창턱으로 몰려오기까지 했다. 내가 영향을 받았거나 끼쳤던 얼굴에서 얼굴로 승화한 이 현상세계는 다만 사계만 존재한다. 겨울처럼 얼다가도 여름처럼 풀리기도 하며 가을처럼 가버렸거나 다시 봄처럼 마주하는 인식, 얼굴 하나가 마주하고 있다.
설부화용雪膚花容이라는 말이 있다. 눈처럼 고운 피부와 꽃 같은 얼굴로 미인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눈처럼 고운 백지에 꽃 같은 말로 내 얼굴을 대신할 수 있는 작품, 시인이면 누구나 희망하는 일이겠다. 얼굴처럼 내리는 눈밭을 잠시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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