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솔도 없이 의자가 햇볕을 받고 있다 누군가 읽다 만 책이 그 위에 뒤집혀진 채 놓여 있다 파도는 금세 의자를 덮칠 것이다 무지개색 공을 주고받던 연인들 재잘거리며 파도와 장난치던 아이들 모래무덤 속에 들어가 누워 있던 사람들 발자국만 무성하게 남아 있다 발이 녹아버릴 만큼 뜨거운 모래다 누군가 사람들을 지워버렸다 파도가 밀려갈 때마다 색색의 자갈들이 선명하게 빛난다 틀니 하나가 입을 벌린 채 모래 속에 박혀 있다 대낮에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해변을 따라 꽂아놓은 바람개비들이 맹렬하게 돌아간다 의자는 쉬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칼이 물려 있다 석양의 발꿈치가 칼에 닿자 피가 번진다 의자가 물속으로 서서히 잠긴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책이 뗏목처럼 둥둥 떠 있다 바다는 여전히 육지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파도는 철조망까지 닿지 못하고 달아오른 얼굴을 모래에 묻는다 파도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얼띤感想文
커튼콜이란 연극이나 음악회 따위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계속 보내어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오게 불러내는 일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다. 시적인 의미는 땅속 그늘을 조각하기 위한 땅속 깊은 우물을 끌어 올리는 행위, 일종의 마중물을 본다. 부어 사라진 마중물에 힘겹게 퍼 올린 물그림자를 통해서 땅속 그늘을 본다. 시의 역정歷程을 보는 셈이다. 역과 정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글자가 벼 화禾다. 시간의 경과는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유지는 무엇을 먹어야 이루는 일이다. 그 과정이다. 역력가지歷歷可知라는 말이 있다. 지나온 세월은 분명히 안다. 전정만리前程萬里라는 말도 있고 붕정만리鵬程萬里도 있다. 전자가 젊은이의 장래가 유망함을 이른다면 후자는 머나먼 노정으로 사람의 앞날이 요원함을 말한다. 파도처럼 밀려온 세월에 모래처럼 발자국을 남겼다. 지구의 생물사에 비하여도 하나의 틀니, 살아 있으니까 씹는 행위 그러니까 저작력(咀嚼,著作) 하나만큼은 유지하고자 하는 알 수 없는 책을 뗏목이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로 밀입국을 하는 것인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 말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 어디든 사실 없다. 내 마음 깊은 땅속 그늘을 지우는 행위에 불과한 의자 하나가 다만 햇볕을 받고 있음을 말이다. 오늘도 파도는 밀려올 것이고 밀려갈 것이다. 그 파도를 당당히 맞서며 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