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들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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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6회 작성일 23-06-20 13:33본문
자매들
=이선이
단 한 번도 너희라고 불리지 않은 채 언제나 우리로 버무려지는
씨앗을 들여다보는 오후이거나 잎들을 포개보는 자정이지만
은밀할 것 없는 연보(年譜)를 훑어보듯 서로를 허밍하는
부처님 오신 날 절집 마당에 단 등불로 서로의 이름을 빛내면서도
등 값은 반드시 공평하게 나누어내는
엄마 제사상엔 각자의 슬픔을 영광굴비처럼 절여 올리고
출생의 간격을 제기(祭器)처럼 알맞게 유지하는
가파른 취기에 혀를 데워 제 몫의 음복을 노래하면서
일 년에 한두 번 얼싸안고 그립다 서럽다 눈물웃음 접붙이는
돌아와 하나씩의 지붕 아래 혼자의 밥상을 차려놓고
식물을 사랑하는 자매들이라 불리기를 소망하는
채송화처럼 봉숭아처럼 서로 다른 분홍을 나눠가졌을 뿐인
자기결정성을 상실한 유전자들
시전문 계간지 《딩아돌하》 2018 가을
이선이
1967년 경남 진양 출생. 1991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서서 우는 마음』, 평론집『생명과 서정』『상상의 열림과 떨림』 등.
얼띤感想文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아니라 남존여비南存女悲처럼 읽어도 무방하다. 시적인 측면에서다. 女를 별처럼 읽었다. 조선 전기 때까지만 해도 남존여비는 없었다. 시대를 거슬러 오르면 인조반정 이후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유교적인 문화가 더욱 팽배했으며 그 원인은 서인 서인에서 분화한 노론, 노론 당수였던 송시열의 주자학에 대한 심히 맹신한 그 결과였다. 주자학에 도전한 인물은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휴’였다. 역사의 관점도 이 노론으로 인해 명나라에 대해 사대와 소-중화사상까지 대두한 시기, 우리의 민족성을 더욱 축소한 한때의 시대상이었다. 그러한 사상은 일제강점기를 통해 식민사관으로 더욱 구축되고, 해방된 지 몇 년인가, 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아직도 헷갈리는 젊은이 앞에 그 죗값은 누가 다 지을 것인가! 국어와 국사는 늘 함께한다. 시를 읽다가 잠깐 스치는 생각이었다.
시에서 오른 시어, 영광굴비 참 재밌게 읽었다. 굴비라는 것에 비굴이라는 시어를 쓴 어떤 시가 지나가기도 했다. 제기처럼 알맞게 유지한 시 문장에 맛깔스럽기만 하다. 일 년에 한두 번, 여기도 마찬가지다. 좀 자주 보고 자주 읽으면 좋으련만, 우리 문학의 한계라고 하면 좀 과한가! 문자가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보지 않는 세상에 있으니까, 채송화에서 採送話로 읽으면 또 어떨는지, 봉숭아에서 奉崇我로 여긴다면 지존일까! 자기 결정성을 상실한 유전자지만 살아 있는 그 순간을 즐긴 건 틀림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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