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칼 =박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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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35회 작성일 23-09-09 11:55본문
늑대와 칼
=박일환
에스키모가 늑대 잡는 법은 이렇다네 얼음 벌판에 피 묻은 칼을 거꾸로 꽂아놓으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와서 칼날을 혀로 핥는다는 거야 그러다가 혀를 베고, 자기 혀에서 나온 피를 계속 핥는다는 거지 결국 피가 다 빠져나가 죽은 늑대를 둘러메고 오기만 하면 된다는군
지금, 피 묻은 칼날을 자기 혀로 핥고 있는 늑대는 누굴까? 피 묻은 칼을 꽂아두고 간 자는 언제나 보이지 않고, 피의 향내가 주는 유혹은 강렬해서 자기도 모르게 긴 혓바닥을 내밀곤 하지 탐욕스러운 혓바닥부터 뽑아버려야 하는데 그럴 수 있어?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소리 환청처럼 들려오는 동안에도 칼날 곁을 떠나지 못하는 혓바닥의 저 성실한 노동이라니!
얼띤感想文
한때 커피 강좌를 통해 자주 써먹었던 얘기다. 에스키모와 늑대, 칼날은 피할 수 없으면 잘 핥아야 한다. 누구의 피든 그것이 나에게 영양가를 제공한다면 말이다. 그만큼 예리하고 정교한 것이 이 사회가 만든 시스템이겠다. 갈수록 더 정교하고 더 첨예하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고 배움만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반드시 실행은 중요하다. 칼날을 핥으면 혀가 베이고 피가 난다. 기운은 자꾸 없어지고 사는 게 뭔지 회의감도 들지만 어쩌다 핥은 게 내 눈을 맑게 했다면 또 세상 달리 보게 되니, 무엇이든 차분해야 한다. 무엇을 대하든 마음이 먼저고 그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니까. 밥그릇에 담긴 물처럼 한 계단 딛고 오르기 위해서는 평정심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그야말로 한 계단을 오롯이 올랐다면 말 그대로 성취다. 피할 수 없는 저 칼날에 잘 피할 수 있는 혀의 길, 공부와 실행밖에 없다. 마음 다칠 일 여럿 있겠지만, 그때마다 밥그릇에 담은 물을 떠받듯 출렁거렸다면 가든 길 잠시 멈추고 지나온 길을 다시 더듬어보자. 마음을 가라앉히자.
박일환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 추천을 받아 등단. 시집 “귀를 접다” 펴낸 곳 「청색종이」
댓글목록
金富會님의 댓글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게요....어느틈에 가을이...성큼...
세월이란 섭리의 사슬 속에서 돌고도는 것...
나이가 들어가니 강물 같아요..시간이.....그 안에 또 다시 강물이 흐르는
그래도 수평을 유지하는 물결....
건강하자구요....
뵐 날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