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 가는 길 / 조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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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9회 작성일 23-11-15 19:14본문
누란 가는 길 /조유리
이 길을 감고 푸는 동안
내 몸에는 실오라기 한 올 남지 않았네
바늘귀에 바람의 갈기를 꿰어
길게 박음질한 신작로를 따라 걸어가는 저녁
몸 바깥으로 향한 솔기부터
올을 풀기 시작하네
바람이 모래구릉을 만들어 낙타풀을 키우는 땅
결리고 아픈 생의 안감을 뒤집어보면
천년 전 행성이 반짝 켜졌다 사라지곤 하네
계절풍은 고름을 풀어 우기를 불러오고
초승달을 쪼개 먹다 목에 걸려 운 밤
캄캄한 잠실蠶室에 엎드려
산통을 열어 한 사내를 풀어 주었네
수천 겹 올이 몸에서 풀려나갈 때
살아온 시간 다 바쳤어도
바람을 동여매지 못하리란 걸 알았네
내 몸속엔 이 지상에 없는
성채가 지어졌다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 태실胎室 속
목숨을 걸고 돌아갈 지평선 한 필지 숨겨두었네
얼기설기 엮기
차갑게 박음질한 마음 구석구석을 거두어서 왔네. 먼 길을 돌아 도저히 감아 둘 수 없는 실타래처럼 낯선 나를 아주 낯 설게 풀어 놓으며... 아직도 품고 있는 사내의 체취, 그리움이 내 목을 깊이깊이 누르는 날, 이 지독한 산통이 열릴까?
그리하여 몸부림치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 버릴까... . .
바람도 동여매지 못한 5월을 난 구석구석 버리지 못한 사내의 체취를 숨겨 놓고
자꾸 길 바깥을 걸어 인간이 살지 않는 한적한 곳으로 산통을 풀려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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