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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의 짜파게티 =고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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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5회 작성일 24-06-09 13:47

본문

일요일 오전의 짜파게티

=고선경

 

 

    애인의 집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남자를 사랑했다 꿈속에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빌었다 부디 나를 가져줘 나는 너의 것이야 모든 남자에게 거절당한 후 잠에서 깨면

    10월이었고, 애인의 품속이었다 베란다 너머에서 빗소리가 와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비는 어떤 것까지 옮길 수 있을까 내 파란 담뱃갑, 투명한 뿔테안경, 외국어가 적힌 티셔츠, 절간 냄새, 팥빙수 모양 핸드폰 고리, 처피 뱅, 빌어먹을

    나는 여름 풍경까지 지나서 왔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참았어 꿈은 끝까지 결말을 보여주지 않더라 참지 않아도 되는 것을 참는 사람의 결말이란 이런 것이겠지 애인은 가끔 슬리퍼가 되었다가 곤충이 되었다가 노트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었다가 한다

    어제는 슬리퍼가 된 애인과 함께 동네 미용실에 갔다 노인들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쁘네 비가 얌전히도 내리네 나는 얌전하게 앉아 가운 위로 툭툭 떨어지는 앞머리를 내려다봤다 애인은 발끝에서 달랑거렸다

    남자들에게 차였다고 내가 풀죽어 있으면 애인이 속상해할 것이므로 나는 티내지 않는다 그냥 인간들이 참 나빠, 중얼거리는 일요일 오전.......짜파게티 먹을래? 애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 애인은 휙, 짜파게티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한 남자들 중 하나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돼 버리는 순간, 우리는 처음 어떤 결말을 맞이하겠지 새카만 진실 속에서

    애인은 짜파게티를 싫어하고 짧아진 내 앞머리를 좋아한다 좋음과 싫음을 참지 않는다 나는 안경을 찾아 쓴 뒤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젓는다 소리만으로 비가 내리고 있구나 아는 건 참 쉬워 후루룩 삶아진 애인은 부디 나를 가져줘 애원하는데.....집어올리려 할 때마다 면발이 툭툭 끊어진다

 

 

   얼띤感想文

    일요일이 흐르고 있다. 하늘은 끄무레해서 오늘 포항으로 떠난 한 무리의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어제는 비가 오고 오늘은 그나마 갠 하늘 아래 푸른 바다 한 점 씹으며 흰 막걸리 한 잔 들어 올릴 것이다. 나는 한동안 잊었던 눈발이 없는 곳에서 눈발 당기는 칼을 집어 들고 그간 내가 몰랐던 억새의 탄성을 추적한다. 벌써 6월이다. 눈발의 품속에 있을 때가 좋았다. 바깥은 빗소리 난무한 억새 길, 소금을 이고 건너는 강물에 늘 푹 적시고 마는 하루의 깨달음, 다시 해가 뜨고 반복되는 내 삶에 과연 강 건너 저쪽 딱딱한 대지를 밟을 수나 있을까 생각한다. 꿈은 끝까지 결말을 보여주지 않더라는 시인의 말, 그 끝이 무엇이라고 확신하는 매 순간만 믿을 뿐이다. 과정은 늘 반복되는 고통이 따르고 해는 떴지만 떠 있지 않은 해처럼 느낄 수 없는 하루만 쌓는다. 그것도 살아있어 느끼는 고통이겠다. 무엇보다 지우개처럼 말끔한 하늘만이 그 위에 새롭게 쓰고 싶은 목적지 없는 새처럼 나는 꿈만 있는 것이다. 아직도 행운은 남아 있다. 일요일 점심, 국수를 삶고 면발 뚝뚝 끊기는 시간을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히히.......

 

    꿈, 공중누각空中樓閣이다.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적으로 흐르는 어쩌면 세차게 모는 침묵의 틈새를 매 순간 놓치고 마는 변주곡일 따름이다. 오늘도 그 틈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그릇 짜파게티가 되고 마는 남자, 기꺼이 한 젓가락 들고 목구멍에다가 쑤셔 박는다.

 

    내일도 블랙홀처럼 해가 뜰 것이다.

 

    문학동네시인선 202 고선경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059-0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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