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 =임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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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
=임유영
남쪽 숲에선 새끼 곰이 깨어났습니다. 자는 동안에도 키는 자랐습니다. 가슴의 흰 반달도 커졌습니다. 곰, 발톱도 길었습니다. 두껍고 새카맣습니다. 자던 자리가 동그랗습니다. 엄마 곰은 어디 가고 없습니다. 빠진 이빨들 흩어져 있습니다. 곰, 외로움 있습니까? 곰, 일어나 앉습니다. 엄마와 약속한 일이 기억납니다. 산골의 다람쥐, 멧돼지, 토끼, 뱀들도 엄마랑 약속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면 깨어나기로 합니다. 따뜻해지면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합니다. 꽃이 피면 같이 놀기로 합니다. 곰, 눈 비비고 기지개도 켜봅니다. 혼자 가만히 엄마 엄마 불러도 봅니다. 곰, 두려움 알고 있습니까? 몸이 가렵습니다. 앞으로 구르고 뒤로도 굴러봅니다. 곰, 배가 고프고 목도 마릅니다. 구멍 밖에서 쑥냄새, 취냄새 향긋하게 불어옵니다. 졸졸 물 흐르는 기척 들려옵니다. 무엇이든 찾으러 나가야겠지요? 천둥처럼 쾅쾅 울리는 소리,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곰, 슬픔 알지요? 여기는 세상입니다. 동면에서 갓 깨어난 곰을 발견하면 절대로 다가가지 마세요.
얼띤感想文
무소처럼 혼자서 가라! 뭐 이런 문구가 떠오른다. 단단, 맞다. 사람은 단단해야 한다. 조금 외로움은 있더라도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 북쪽은 너무 편리한 대로 가는 것을 보며 있고 세상 남쪽은 소외된 마음으로 웃자란 숲만 자꾸 우거지는 듯하다. 그 숲에 우리도 잘 모르는 한 종자가 있었으니 그것을 뒤집어 까놓은 곰이라 명명해 본다. 곰은 숙면의 필요성을 갖게 되며 그 속에서 키는 웃자라게 되어 있다. 이때 가슴의 흰 반달만큼 꿈을 가지며 세상 허공을 할퀴어 보기도 한다. 산골 다람쥐, 멧돼지, 토끼, 뱀 이와 같은 성질과 모양으로 번뜩이는 긴 겨울의 동면, 잠든 적 없는데도 꿈은 꾸게 되고 깨고 보면 어느 반달에 조금 닿아 있었으니 이를 아! 시베리아라고 하면 안 될까! 껑껑에서 꽁꽁 더 나가 훨훨에서 후루룩 할할 그 한 모금. 거저 혼자 되뇌며 미쳐가는 세상 한쪽 선풍기는 자리 잡아본다. 곰, 두려움 알고 있습니까? 아 네 그 두려움 온몸 깊숙이 꽂혀 있다는 것을 그러나 분명 알아야 한다.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꺾어 오르는 북쪽 마음을 보드라운 구름 구두를 신고 둥둥 흰 천막에 거닐어 보는 것 그것은 꿈이다. 어두운 꿈이다. 그것을 한때 검정이라고 표현하는 이가 있었다. 어떤 이는 침묵의 반란이라 얘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것은 모두 변주곡이라 이름하고 우리만 아는 세계에서 쓰이지 않는 말로 음악처럼 한 세계를 그리는 악공, 오늘도 나는 하나의 꼭짓점만 뭉개어 본다.
문학동네시인선 203 임유영 시집 오믈렛 0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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