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가 픽픽 쓰러진다 내가 좋아하는 당나귀가 쓰러진다 붉은 몸통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가진 당나귀 내가 좋아하는 당나귀는 볼리비아에서 태어나 상인들의 손에 이끌려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감자 바구니를 옮기다 픽픽 쓰러졌다 채찍은 바람을 가르고 대지에 내리꽂혔다 이듬해 그 자리엔 어김없이 감자 싹이 돋았다 상인들은 그를 장난감을 생산하는 다국적기업에 팔았고 그곳의 마스코트가 되어 여러 나라를 떠돌던 그는 이제 대한민국에 산다 여기서도 당나귀는 픽픽 쓰러진다 꼬리를 당기면 그의 네 다리에 힘이 풀리도록 누군가 손을 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깔깔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흉내낸다 어른들은 이 당나귀에게 또 다른 묘기를 시킨다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침 튀기며 말한다 노인들은 당나귀의 털을 한 가닥 뽑아 부적처럼 품안에 넣는다 쓰러지는 당나귀를 볼 만큼 본 사람들이 돌아가면 아무도 꼬리를 당기지 않아도 당나귀는 쓰러진다 나는 너무 열심히 살았어 내가 좋아하는 당나귀가 중얼거린다
얼띤感想文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눈은 폭폭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 못 할 사랑이 있다면 황톳빛 명아주를 움켜쥐고 흰 당나귀에 올라타 보자. 세상은 싫어 떠나는 것이 아니다. 도란도란 산골로 가 이랑이랑 밭매며 오늘도 감자 씨앗을 뿌리자. 물론 우리 시문학에 있어 커다란 족적을 남긴 백석 시인의 그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잠시 인용했다. 시인의 본업은 무엇일까? 쓰는 것이다. 쓴다는 건 다채로운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 줄 글귀라도 나오겠다. 아무래도 시인께서는 여러 곳 여행을 다녀보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볼리비아에서 태어나 상인들 손에 이끌려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다는 말, 감자 바구니를 옮겼다. 물론 감자가 감자가 아니듯이 시인의 직분인 시초에 대한 한 아름의 눈빛들이겠다. 장난감을 생산하는 다국적기업은 무엇일까? 레고와 같은 문자 한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한글을 보고 레고처럼 생겨 무언가 짜깁기하듯 배움의 놀이에 재미를 더한다고 했다. 스위스라는 한글 국호를 보고 스위스 사람은 어찌 그리도 잘 표현했느냐며 얘기한다. 물론 그들은 한글의 모양을 보고 얘기하는 것이다. 산과 산 사이에 창 들고 서 있는 경계병처럼 그곳이 스위스였다. 오늘도 부적처럼 내 안의 잡귀를 몰며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흰 당나귀에 올라타 본다. 황톳빛 명아주가 쉬이 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