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들의 시간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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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들의 시간
=심보선
그가 그녀의 손등에 묻은 자그마한 얼룩을
자신의 침으로 닦아줄 때
그녀가 자신의 손등에 묻은 끈적이는 침을
화장실 휴지로 닦아낼 때
닦아주고 닦아내는
구원받고 버림받는
못 견디게 더러운
더럽도록 숭고한
언제나 예상보다
너무 이르게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하는
서로 다른
침들의 시간
침들의 시간
얼띤感想文
여기서 침은 어떤 교훈이나 지침 같은 거 아니 삶의 진리 같은 것이겠다. 한 사람을 위해 애써 노력한 정성이 수포가 될 때 아니,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행한 것도 아니지만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거나 인정을 못 받을 때 그때 오는 모멸감 아니 굴욕이나 수치 같은 것이겠다.
침이라 얘기하니,
침소봉대針小棒大라는 말이 있다. 바늘만 한 것을 몽둥이 만하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과장하는 말로 상대에게는 더욱 선명하게 닿는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산더미 같은 파도라든가 콩알만 한 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는 등 배가 산만큼 하다는 예다. 여좌침석如坐針席이라는 말도 있다. 바늘방석에 앉은 거처럼 몹시 불안하고 거북함을 말한다. 마부위침磨斧爲針,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말도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침이 들어간 사자성어 하나만 더 들어보자. 면리장침綿裏藏針 겉모습은 부드러우나 속은 모른다. 바늘처럼 흉악스러운 것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 모두 중국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이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인간사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침, 여기서는 타액唾液으로 썼지만, 이 속에는 한 사람의 경전과도 같은 말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있다. 너무 이르게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이로운 말도 때로는 해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말도 될 수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 심보선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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