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라는 키스 =천수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깁스라는 키스
=천수호
나는 아름다운 초록 깁스다리를 가지는 것으로 이 여름을 통째로 그에게 내주었다 다리를 잃은 꼬리지느러미도 말소리를 놓친 두 입술도 둥둥 뜬 나의 여름 때문에 숨 막히는 어항 속 유영법을 익혔다 초록 깁스다리로 배운 아가미 호흡법을 장식품처럼 선반에도 올려놓고 잠들기 전의 머리처럼 베개 위에도 눕혔다 조문하지 못한 사람을 더 오래 배웅하고 그의 문장 호흡을 더 깊이 따라가본다 내 여름은 초록 깁스다리여서 걸음걸이는 변명이 되고 병명이 되어간다 체온이 되고 시멘트 담벼락이 되고 말랑한 명령이 된다 부서진 것에도 금이 간 것에도 입술만 붙여버리는 초록 깁스의 시간
얼띤感想文
깁스는 석고붕대다. 딱딱한 성질을 갖는다. 초록草綠은 식물이다. 또 다른 의미는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따로 기록하는 것을 초록抄錄이라 한다. 초抄 손 수(手) 변에 적을 소(少)가 합쳐진 문자다. 이 글자는 노략질하다 약탈한다는 의미도 있다. 고대에는 부패한 관리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초가抄家라 했다. 여기서 더 발전하여 초抄는 문서를 베낀다는 의미로 요즘은 자주 사용한다. 필요한 부분은 가져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초록 깁스 다리는 아직 시멘트 담벼락에 이르기에는 좀 먼 상태, 여름이라는 계절은 덥기까지 하고 무언가 진행되는 상황적 묘사다. 어항 속 유영법, 어항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유영遊泳과 유영孺嬰이다. 젖먹는 아이처럼 헤엄치며 논다. 그것은 어디든 따라 다닌다. 선반에도 잠들기 전 머리맡에도 조문하지 못한 사람을 더 오래 배웅하듯 좀 더 깊이 감상한다. 말랑한 명령이 된다. 명령明靈, 모든 것을 밝게 널리 살피는 영혼이다. 부서진 것에도 금이 간 것에도 나의 입술을 조금, 조금만 더, 아니 쪼매만 더 붙이는 시간 초록 깁스의 시간 퇴고의 시간이겠다.
시인의 여름은 실지 다리에 깁스한 상황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 불러온 마음을 한 수 시에다 담았으리라 본다.
문학동네시인선 149 천수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104p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