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새장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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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
새장
=최금진
나는 거울을 내려놓는다
당신은 털 빠진 목을 내밀어 새장 밖을 내다본다
손을 넣어 당신의 긴 머리카락을 빗겨준다
깃털이 졸음처럼 쏟아져내린다
잠에서 깬 당신은 잠에서 깬 자신을 볼 것이다
지워진 화장을 고치며
저렇게 우울한 새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중얼거리며
거울을 볼 것이다, 만져지지 않는 뒷모습
당신의 따끈한 해골을 꺼내고 깨진 알껍데기를 넣어준다
당신은 둥근 알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웃는다
거울이 당신을 찬찬히 훑어본다
상하좌우의 딱딱한 표정
우두커니 콩알을 쪼아대는 한쌍의 허무가
다 늦은 저녁을 물고 거울 속으로 날아간다
나는 텅 빈 새장을 들고 시장에 가서 당신을 팔 것이다
당신은 이 빠진 빗을 들고 희고 긴 머리카락을 빗는다
창비시선 377 최금진 시집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26p
얼띤感想文
데칼코마니는 거울을 보고 서 있듯 대칭적으로 보이는 자아를 말한다. 마치 물감으로 어느 쪽이든 먼저 찍어놓고 반 접을 시 그대로 찍어나오는 다른 한쪽을 보는 것과 같다. 굳이 단어로 표기하자면, 토마토, 기러기, 락앤락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시인께서 써놓은 시제 데칼코마니는 시 문장 전체가 시적 묘사로 이루었다. 이 시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은 한마디로 말해서 데칼코마니라는 걸 말뚝처럼 꽂아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거울을 내려놓는다, 나를 그려보는 작업, 거울을 내려놓는 일은 곧 시 쓰는 행위 시 서두다. 당신은 털 빠진 목을 내밀어 새장 밖을 내다본다. 그러니까 속을 다 내보이는 행위, 시 쓰기는 새장처럼 글을 가두는 것과 같고 가두어 놓은 새(시)는 그 새장 밖을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 손을 넣어 당신의 긴 머리카락을 빗겨준다. 머리카락은 검정을 상징한다. 형태가 가늘고 까만 것에 글과 유사성을 지녔다. 손을 넣었다는 것에 시인의 탁월한 글 맵시를 본다. 깃털이 졸음처럼 쏟아져 내린다. 깃털 또한 검정의 상징, 부제로 새장을 생각한다면 그 분신은 깃털, 다 뽑아놓은 상태다. 그러므로 잠에서 깬 당신은 잠에서 깬 자신을 본다. 지워진 화장을 고치며, 저렇게 우울한 새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중얼거리며, 시 인식은 죽음과 같으므로 읽으면 덮어 아니 덮였다가 긴 어둠으로 잠길 것이다. 거울을 볼 것이다, 만져지지 않는 뒷모습 한쪽에서 다른 쪽을 보아도 거울이며 다른 쪽에서 바른쪽을 보아도 거울이다. 만져지지 않는 뒷모습처럼, 다음 문장은 이 시에서 가장 압권이다. 당신의 따끈한 해골을 꺼내고 깨진 알껍데기를 넣어준다. 시 측 대변이다. 당신의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놓은 것이 시며 시는 곧 깨진 알껍데기나 마찬가지다. 데칼코마니다. 알껍데기 안에 해골이 있다는 점에서 해골을 먼저 나열하였다. 그러므로 알과 해골은 그 성질이 같다. 당신은 둥근 알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웃는다. 둥근 알껍데기, 성서나 진리처럼 다 써놓은 시다. 물방울이며 이슬이며 구체다. 거울이 당신을 찬찬히 훑어본다. 상하좌우의 딱딱한 표정 위아래 좌우, 좌는 왼쪽이며 별자리 혹은 죽음을 상징한다. 우는 오른쪽 근심, 병, 집, 삶을 대변한다. 데칼코마니와 새장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관을 덧붙인다면 딱딱함은 절로 묻어나겠다. 우두커니 콩알을 쪼아대는 한 쌍의 허무다. 우두커니라는 말도 재밌지만, 콩알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콩 두豆(머리 두頭)에서 오는 오감과 알이 겹치자 새장이므로 새 모이에 적절한 비유였다. 다 늦은 저녁을 물고 거울 속으로 날아간다. 죽음을 물고 새 날아간다. 나는 텅 빈 새장을 들고 시장에 가서 당신을 팔 것이다. 이 표현도 압권이다. 알은 훌 빼놓았으니까 알은 들고 있고 그 알 속 뺀 새장(시집)을 들고 시장에 내다 판 시인을 본다. 당신은 이 빠진 빗을 들고 희고 긴 머리카락을 빗는다. 여기서 당신은 시 객체다. 순간 이 빠진 빗 무언가 알짜배기 없는 도구를 들고 내 긴 머리카락을 빗는 것 같다. 여기서도 희고 긴 머리카락이라 했다. 희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이 이른 색상으로 이보다 더 좋은 색상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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