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오는 사람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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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오는 사람
=조말선
앞에서 오는 사람을 딱 마주칩니다 왼손이 오른손에게 가서 왼손의 소리를 듣듯이 심벌즈가 심벌즈에게 가서 자기를 시끄러워하듯이 앞에서 오는 사람을 앞에서 오는 사람이 마주칩니다 시끄럽나요
그때 사나운 운명의 이빨이 누군가의 심장을 물어뜯고 지나갔다고 해도 증거는 없습니다운명적이니까요
마주쳤으니까요
아침식사 뒤에 점심식사가 오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딱 한 번 시끄러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점점 멀어지는 운명처럼
문학동네시인선 172 조말선 시집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070p
얼띤感想文
운명이었다. 앞에서 오는 사람을 지금 만난 것처럼, 그렇다고 여기 앞에서 오는 사람이 방금 나에게 ‘안녕하세요’하며 인사한 건 아니었다. 거저 두 눈 부릅뜨고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무언가 허점 아니 마음의 빈자리라도 있을 거 같은 어떤 징후 같은 것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다. 눈알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루 괜찮으셨나요? 아무런 말이 없는 운명적인 사람, 그는 오로지 죽음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어쩌면 단단히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은 심벌즈처럼 때리는 키스, 그 상황을 모색하는 일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자강불식自强不息과도 같은 시끄러운 현상, 그 결과 금풍옥로金風玉露와 같은 한 모금의 갈증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하루는 그러니까 운명의 이빨처럼 갈겼다. 어렴풋이 보이지도 않는 더욱 나아지려고 하는 앞에 가는 사람을 흠모하면서 앞에서 오는 사람을 지금 마주쳤으니까! 그러나 뒤에 머물며 안주하는 이 처량한 신세는 또 어쩌란 말인가? 시끄러워야 한다. 그것은 분주와 광분 사이 선택의 잘못과 그것을 처리하지 못한 수수방관한 일까지도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심벌즈, 앞에서 오는 사람은 많은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어쩌다 마주친 그 사람, 눈이 붉어 울고 있는 사람 우는 방법을 찾지 못해 마냥 비비고 있는 저 처량한 자세에서 아침과 점심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딱 한 번 시끄러워야 시끄럽듯이 점점 멀어지는 운명처럼 저기 저기요. 안녕히 계세요. 영원히 눈을 감으면서 공자의 한 말씀을 떠올려본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후생(後生)을 두려워할 것이니라. 어찌 오는 사람이 지금과 같지 못할 줄을 알겠는가. 그렇지만 만일 그들이 나이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어도 그 이름이 들려오지 않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느니라.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 여기서 후생(後生)은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後輩)에 해당(該當)하는 사람이다. 시간의 유한성, 불혹은 마냥 바쁘게 보냈다 하더라도 앞에서 오는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해야 했다. 지천명, 원숙한 인생의 절정기 앞에서 오는 그 사람다운 내 기대에 맞는 앞에서 오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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