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믈렛 =임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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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믈렛
=임유영
한데 섞인 흰자와 노른자의 중립적인 맛. 사각사각 씹히며 풋내를 살짝 풍기는 피망의 향기. 아주 잘게 썰린 햄의 질감과........ 버터. 강렬한 버터의 향기. 불에 충분히 달궈진 버터와 부드러운 달걀의 신비로운 조화. 신적인 것. 강렬한 것. 달걀과 불과 기름. 약간의 소금과 후추. 그러나 어떤 비법에는 아주 적은 양의 설탕이 포함되기도 하는데. 마치 독약의 이로운 활용법처럼. 설탕이 독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순수한 설탕의 혐오자는 의사가 아니라 알코올중독자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단맛을 싫어하다못해 그것에 반대하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달콤한 것은 오직 술이면 족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들은 모르지. 아침의 오믈렛에, 짭짤한 비스킷에, 심지어 튀김옷 반죽에도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설탕.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 아침을 만드는 사람의 손. 안주를 만드는 손. 여자. 여자의 손. 여자들의 손. 묶인. 찔린. 찢긴. 손. 희고 검고 누런 세계의 손. 여자가 가진 손. 레이디 핑거스. 쿠키의 이름. 알코올중독자 중에도 여자가 많은데 누군가 그들에겐 각별히 키친 드링커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내 위장을 들여다볼 검시관은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알코올중독자라면 더할 나위 없다.
문학동네시인선 203 임유영 시집 오믈렛 070p
얼띤感想文
오늘 아침은 오믈렛 한 그릇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젠 많은 것을 맛보며 살 나이는 아닌 거 같다. 유칼립투스만이 내 위장은 바라고 있듯이 나머지는 설사처럼 흐르는 생활에 다만 버거울 따름이다. 시인이 말한 오믈렛, 오믈렛에 대한 묘사가 시 서두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오믈렛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갖은양념과 조리방법이 들어간다. 아니 조리방법이라고 할 거까지는 없다. 이미 만든 것에 대한 여러 풍미를 말이다. 가령 피망의 향기. 햄의 질감과 버터. 강렬한 버터의 향기. 불에 충분히 달궈진 버터와 부드러운 달걀의 신비로운 조화.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묘사. 그러나 설탕만은 유독 꺼리는 얘가 있다. 알코올중독자다. 그러면 왜 알코올중독자를 지목한 것인가? 설탕을 넣어 맛이 있다면 설탕 넣어 먹으면 그만인 것을, 여기서 설탕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조미료 중에서도 달콤한 어떤 치장 그러니까 가식적인 남의 입맛에 유독 들여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설탕을 싫어한다. 그 외, 서두에서 시작한 오믈렛에 대한 진정한 정의는 강렬한 버터의 향기, 피망의 향기, 신적인 것, 강력한 것, 달걀과 불과 기름, 약간의 소금과 후추 등등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설탕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는 부연설명을 잇는다. 심지어 튀김옷 반죽에도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설탕,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 이후 손을 위한 행진은 계속되고 그러니까 그것은 세상을 주무르는 손이다. 이들 또한 설탕을 만진다는 것을 말이다. 내 위장을 들여다볼 검시관은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알코올중독자라면 더할 나위 없다고 단정한다. 그렇다. 내 마음을 직시하며 바르게 보아줄 사람은 갖가지 기술, 마냥 가위손처럼 슥스스슥 쓱쓱 하면 검은 머리가 예술로 승화한 거처럼 술 애호가이자 거기에 아주 완벽히 미쳐버린 홀릭정도라면 내가 만든 오믈렛은 엄지척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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