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통장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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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통장
=김상미
엄마의 통장을 어떻게 하나? 내 통장 상자에 아직도 들어 있는 엄마의 통장 이제는 쓸 수 없으니 버려야 하는데 객지에 사는 딸이 매달 부쳐주는 용돈을 딸이 보내는 반가운 편지인 듯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돌아가시면서 건네주시던 그 통장 그 통장의 돈을 형제들과 똑같이 나누면서 펑펑 울었던 아, 우리 엄마의 통장 그 내리사랑을 어떻게 하나? 이제는 훨훨 태워 자유롭게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끼고 아껴서 자식에게 되돌려줄 기쁨에 불어나는 통장 액수만큼 몇 배로 검소하셨을 우리 엄마 그 착한 통장을 어떻게 버리나? 일거리가 없는 달엔 하루 한끼만 먹고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엄마의 용돈 그 용돈 보내는 재미로 힘내며 힘차게 살았는데 이제는 그 재미 사라진 지도 어느덧 십여 년 은행에 가기 위해 통장을 꺼내는데 그 아래에서 삐죽 고개 내밀며 활짝 웃는 엄마의 통장 나도 모르게 엄마, 은행 다녀올게! 꾸벅 인사하는 나 아직도 엄마의 손길, 엄마 냄새 가득한 착하디착한 그 통장을 어떻게 버리나? 창밖엔 엄마가 그리도 좋아하던 수국이 한창인데 나는 그 수국조차 엄마가 남긴 그리운 유품 같아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지고 붉어지는데
문학동네 시인선 183 김상미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028-029p
얼띤感想文
시 한 수 읽으며 눈시울이 이리 붉어질 때가 있을까! 어머니 생각하면 솔직히 나는 죄인이다. 어느 시인이 말한 거처럼 나는 무지한 똥 막대기다. 어머니의 내리사랑은 그 어떤 것도 대가 없는 사랑이었다. 온전한 삶을 위해 세상을 바르게 보는 자세야말로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태 일어난 잘잘못은 뉘우치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좀 더 사려 깊게 처신하는 것이야 말로 어머니를 위한 보답이겠다.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일과 더는 죄책감 가지는 것도 죄가 될 사유겠다.
어머니의 유품을 일부 챙겨서 사과와 마른 북어와 술까지 담아 저 바이칼호수로 가신 어느 교수님의 얘기가 생각난다. 겨울 동토, 냉기가 서리고 칼바람이 부는 꽁꽁 언 얼음 바닥 위에서 어머니 혼을 기리며 제를 올렸던 교수, 정화수 떠놓고 북쪽을 향해 기도하며 가족의 안정을 기원하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찾아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그렇게 긴 여행을 떠나셨던 교수, 그래서 우리는 우리말은 모국 모국어라 하는 가보다. 옛 대대로 누렸던 우리의 영토였던 저 북쪽 그러나 지금은 갈 수 없는 길 그러므로 우리는 늘 북쪽을 그리워했나 보다.
북쪽은 우리의 마음에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듯이 시인은 어머니의 그 내림 사랑처럼 창밖을 향해 수국 한 송이 곱게 피워 놓았으니, 오늘도 마음의 은행에 알 곡곡 챙겨 넣는 여기 이 마음의 한 끼 내일은 분명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엄마가 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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