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어디인가 차가운 돌 어두운 석실 뚫린 창으로 조용한 빗소리 들려오고 저 비의 음량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정확히 그곳을 때리고 있고 나는 너무 사라지지도 너무 있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 졸음 비슷한 삼매에 빠져든다 나 같은 것들을 위해 물은 이렇게 가끔 하늘에서 자신을 떨어뜨리며 우리를 소리의 장벽 속에 한번 가둬주는 것이다 평소에는 기를 쓰고 들려 해도 들지 못했던 삼매에 이렇게나 쉽게 빠져들게 해주는 것이다 그럴 때 저멀리 들려오는 연두 앵무 울음소리는 보석이 발하는 난연한 빛 같고 이곳은 어쩌면 아잔타 석굴사원의 경내 차가운 돌 쏟아지는 빗소리 다른 승려들은 모두 어디 갔나 소풍 갔나 피안 갔나 나만 혼자 남겨두고 어쩌면 나만 혼자 있을 수 있는 고요를 만들어주기 위해 다들 자리를 피한 건지도 몰라 허나 다시 보면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망해버렸고 석실 밖으로 비는 벌써 이천 년째 내렸다 그쳤다 다시 내리길 반복하고 있고 이제는 거의 돌처럼 굳어버린 나를 지나가던 관광(觀光)객 하나가 망연히 쳐다보다 찰칵, 하고 터드리는 빛에 삼매 아닌 그냥 졸음에서 다만 퍼뜩 깨어날 뿐
문학동네시인선 177 황유원 시집 초자연적 3D 프린팅 078-079p
얼띤感想文
시제 총림叢林은 두 가지 뜻을 지닌다. 하나는 잡목이 우거진 숲이고 나머지 하나는 불교 승려가 모여 수행하는 곳 통틀어 총림이라 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 뜻을 모두 지닌 셈이다. 그러니까 시적 주체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바깥을 보고 있다. 바깥은 삼매와 같은 어둠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안은 마치 석굴에 든 성자와 같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매개체는 내리는 비다. 그 빗소리 그것은 밖이 안을 들여다보는 인식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본 안쪽은 거저 연두 앵무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이 연두 앵무 울음소리는 안쪽에서 보면 보석과 같은 것이다. 누가 이 경전을 읽으랴! 아니 경전을 좀 읽으라 하는 선인의 말씀을 대신에 하는 듯하다. 연두라는 시어가 참 재밌게 닿는다. 색을 가미한 연두連頭 맞닿은 머리다. 앵무鸚鵡 사람의 말을 잘 흉내 내는 새, 그 틈새를 메워야 하는 시 본연의 자세를 본다. 그러나 동물적이다. 가만히 보면 단지 움직임에 불과하다는 거 그 속까지 미치기에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까 총림이다. 다만 숲을 보듯 깜깜한 바깥. 그 세계를 대변할 뿐이다. 밝은 새 아침을 본다. 그러나 세상은 깜깜하다. 오십만 년 전 깜깜한 동굴에서 뗀석기 하나 들고 막 나온 듯 오늘 주말 아침, 잠시 생각한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어떻게 보내면 가장 현명하게 보낼 수 있을까? 총림 같은 현세에서 연두 앵무 울음소리처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