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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버려주시면 됩니다 =고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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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10회 작성일 24-07-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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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버려주시면 됩니다

=고선경

 

 

    우리의 교환일기는 늦여름 더위를 먹고 다 타버렸지

 

    심야 산책중 주운 나뭇잎들과 너의 깨진 안경알 잡동사니 불길한 애정 모든 게 따분해졌는지 몰라 선풍기가 고장난 빈 교실에서 있었던 일 기억해? 그날의 일기에는 귀여운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두었잖아 너의 펜촉은 유창한 주삿바늘이었어 알록달록한 감정들을 주입했지 통통하게 부푼 마음을 찔릴 때마다 나는 향기로워졌어

 

    졸업앨범을 펼치면 나란히 정돈된 자세들을 볼 수 있지만 덧난 시간들은 교정되지 않은 덧니 같고

 

    소각장에서 우리 가끔 불량하게 서서 껌을 씹고는 했잖아 입술을 모아 풍선을 불 때 귓가에 먹구름처럼 흐르던 너의 속삭임 포도 향이었는지 딸기 향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런 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비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루한 노래가 동어반복처럼 들려온다는 게 일주일에 한 번은 식판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된다는 게 도무지 기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우리가 주고받은 핑크색 종이쪽지들은 모서리가 점점 닳아갔지

 

    언제였는지

    에스프레소 또는 아메리카노

    처음 마셔본 커피는 끔찍하게 썼다

 

    내 얼굴은 해바라기의 그을린 씨앗처럼 빼곡해졌어 네가 한 움큼씩 퍼먹던 그것 교환일기의 낱장 사이로 흘러내리기도 했는데 그만큼 많은 증거를 남긴 거야 삶은 너무 무거운 찻잔이라든지 우리가 그것을 함께 견뎠다든지 잘 기억나지 않는 처음이 무심하게 재현되는 것이 미래라면 그건 너무 시시하고 미비하고 신비해 그렇지 않니

    너는 삼 년 내내 여름 감기를 앓았어

 

    때때로 신의 호의란 오직 무심함뿐이라는 생각.......

    네가 우리집 문을 두드렸던 새벽 커튼 사이로 푸른 햇빛이 비쳐들었고 덜 익은 토마토 같은 짠맛이 났지 너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마음이 전부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날에도 우리는 단지 외로운 두 사람일 뿐이었을까? 그렇다면 여름방학에 선풍기가 고장난 빈 교실에서 있었던 일은?

 

    나쁜 꿈처럼 너의 침대맡으로 침투하고 싶던 나날 지나

    나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되어 네 곁에 누워 있어

 

 

   문학동네시인선 202 고선경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022-023p

 

 

   얼띤感想文

    마치 고흐의 영혼 편지를 읽는 듯했다. 시는 자아에 편지를 쓴다. 내가 만약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떻게 쓰면 좋을까? 마지막 남은 나에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두고 마지막 남은 한 장으로 내 마음을 쓴다면 세상 허무할 것 같다. 인간처럼 나약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만약 솔직하지 않다면 내가 만약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묻은 때가 있다면 나에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은 쓰는 자의 당시 솔직함과 그의 위치 즉 현주소를 얘기한다. 우리의 교환일기, 친구나 가족 혹은 연인과 마음을 주고받는 편지다. 그러나 여기서는 나와 또 다른 나와의 편지다. 이미 죽음을 맛본 자아가 그렇지 못한 자아에 당시 상황을 잘 설명이라도 해주듯이 글은 진행한다. 그러니까 아직도 동물적인 움직임 같은 거 가령 심야라든가 나뭇잎처럼 깨진 안경알이라든가 잡동사니 여기에다가 불길한 애정을 더하기까지 이는 고장 난 선풍기로 두뇌 회전을 대신에 하고 일기처럼 스티커 형식으로 붙여나가는 자아의 행보와 그것은 마치 알록달록한 감정의 주입에 불과한 그러니까 톱날과 같은 게 떠오르고 그건 매끄럽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향기로웠다. 졸업앨범이란 하나의 마침표다. 사진처럼 하나의 표상을 그리지만, 여전히 덧니 같은 구조적 미비에 대한 완벽함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어떤 새나가는 소리에 어쩔 수 없었고 소각장은 하루를 지우기 바빴다. 내 지난 시간을 껌처럼 씹는다면 단물은 쪽쪽 빼 먹을 수 있을까? 풍선 같은 구체만 보면 나의 먹구름 같은 하루를 터뜨릴 수 있을까? 포도와 딸기처럼 맛난 하루로 변환하는 일 그것은 시인으로서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일이겠거니 그러나 지금 앉은 자리에서 다만, 분홍의 무지갯빛처럼 오가는 마치 닿지 않는 하나의 스쳐 지나가는 옷자락일 뿐이다. 언제였을까? 에스프레소 한 잔 아니 아메리카노였나 너는 그것을 처음 마셨다고 했다. 이들은 검정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글은 아니 편지는 언제부터 썼을까? 생각나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그을린 한 톨 씨앗에 불과한 것을 말이다. 해바라기 또한 이상향이며 구체의 눈빛을 갖는다. 그것에 온종일 다 타버린 마음이었다면 그것을 향한 나는 한 톨의 씨앗이겠다. 그러니까 시간은 너무 잘 가고, 고개 숙인 해바라기처럼 떠나보낸 하루, 그것은 불가항력적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은 자연 앞에서는 풍전등화風前燈火나 다름없겠지. 삼 년을 여름으로 그렇다. 무엇이든 삼 년은 해보라! 했다. 삼십 년 전에는 무조건 1년은 버텨보자고 했다. 사시사철은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며 조언을 했다. 시대는 많이 흘렀고 인내는 더 줄었다. 1년을 못 버티고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그 1년이 아니라 삼 년이 되었다. 신은 더욱 인간에 고된 역할을 부여한 셈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러나 신은 무심하다. 다만 호의란 것은 꼬박꼬박 제공한 하루 치 거리였고 그 거리를 걷는 이는 여전히 고장 난 선풍기처럼 여름만 보내고 있었다. 줄줄. 다시 또 두드리는 아침 새벽은 토마토처럼 오고 아니 카프카처럼 그러나 새벽을 맞는 그 느낌은 어제와 똑같겠거니 그래서 더욱 밑바탕 없이 뛰어든 바닥을 보고 헤딩을 하고 또 머리는 깨지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울지 못할 사랑의 블랙홀처럼 닿고 더는 알약은 없고 호주머니는 비었다. 나쁜 꿈처럼 침대맡에 얹어놓고 보았던 산책, 되도록 아름다운 것은 많이 보고 살 거라, 고흐가 지나가고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니? 그건 자연이야, 그냥 흘러간다는 거 그래 네 힘으로 안 되는 일 그건 당연한 거야. 물처럼 흐르는 그것에 더욱 집중해 보아라! 큰 배가 아니라 작은 보트에 탄 거처럼 손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 다시 해봐 괜찮아 아직 살아 있으니까 기회는 있는 거야. 그렇게 죽음을 그리워하듯 죽은 사람은 늘 네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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