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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에서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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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7회 작성일 24-07-24 17:41

본문

역전에서

=서효인

 

 

    노인은 한글을 일찍 뗀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자랑스러워했다 장날 아무런 간판에 아무짝의 글자를 읽어보거라 하였다 송정수퍼 식료품 일절 고추 감니다 그런 것들조차 노인은 읽지 못했지만 먹을 것들은 먹을 것들의 문법이 있다 냄새나 색깔 같은 것 후각과 시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인 안쓰러운 노인 어리석은 노인 주전자 공장 노동자 노인과 아이는 기차를 타고 송정리역에서 노안역을 지나 무안역까지 간다 노인은 후각과 시각으로 내릴 역을 아는데 귀소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짐승이라고 해야 하나 꾸벅꾸벅 졸다가도 불쑥 일어나는 것이다 고향의 냄새다

    노인은 손자를 앞세우고 걷는 팔자걸음을 좋아했다 고향집에 가까워질수록 읽어보거라 시킬 것이 사라지고 초록의 색깔과 시큼한 냄새만이 남아 노인의 세계가 완공되어갔다 그 세계에 그날 본 어린 시신은 없었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자 바깥에 있는 구불구불한 세계 나는 글자를 읽기 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글자를 모르는 것은 몸을 구부리고 양수에 숨어 있는 기분이지 않을까 까만 평화가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잘린 엄지손가락의 지문 그것을 글로 쓰려면 한 시대가 걸리겠지만 그렇게 글을 아는 사람은 글로 써야 하겠지만 이미 완공된 노인의 세계에는 부과되지 않을 의무 타는 냄새가 난다 선산이 타고 있다

    비아동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 노인이 시계는 볼 줄 아는 걸까 한번 하게 된 생각은 멈추지 않고 그것은 머릿속에서 글자가 되고 생성된 글자는 영원히 완공되지 못할 건축물의 불량한 자재로 쓰일 것이다 글자를 알면 알수록 불행해질 것이다 기억해야 하니까 한때 우리 모두에게 문자라는 것이 없던 시간도 있었겠지 이 냄새와 이 색깔을 글로 박제할 일도 없었을 테니 노인의 잘린 손가락은 갈색이었고 그에게서는 담배 누린내와 오이 비누 냄새가 교대로 났다 한번 하게 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아이는 읽을 수 있는 걸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다 송정슈퍼 식료품 일체 고추 갈아드립니다

 

 

   PIN 041 서효인 시집 거리에는 없다 20-24p

 

 

   얼띤感想文

    시재 역전은 역전驛前이 아니라 역전易傳이겠다. 그냥 한자의 뜻대로 바꿔 읽는 상황 전이된 오역 같은 것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노인은 한글을 일찍 뗀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노인은 죽음 직전의 상황을 묘사한 시어며 아이는 노인이 직접 쓴 한 줄 시, 문장, 글귀와 같은 것이겠다. 여기서 장날은 세상의 중심이다. 송정수퍼 식료품 일절 고추 감니다. 그러니까 그 문장은 소리글자다. 소리 나는 대로 적었으니까, 표의와 표음. 그러고 보면 중국은 문자 하나로 동아시아권을 통일하였다. 한국, 일본, 중국, 거기다가 소수 민족과 그들의 국가까지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글은 소리글자지만 역시 시학을 들여다보면 중의적 표현이 너무 많아 그 표현력에 있어 놀랍기만 하다. 이는 모두 한자에서 오는 뜻과 소리가 달라서 생기는 일이다. 한글의 제작원리와 한자의 제작원리는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성대구조와 육서의 원리 그 차이 분명, 한자는 사용하기 쉽고 쓰기 편한 문자는 아니듯이

    청나라 말 루쉰은 한자불멸중국필망漢字不滅中國必亡이라고 까지 했다. 하여튼, 노인은 소리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시인은 그 노인에 대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문법이란 먹을 것들은 먹을 것들의 인식이다. 가령 홍어가 홍어가 아니듯이 냄새나 색깔 같은 것 후각과 시각의 세계에서 말이다. 후각도 후각이 아니며 시각도 시각이 아니라는 사실, 그러니까 숟가락을 곧이곧대로 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노인은 주전자공장을 다닌다. 주전자, 그러니까 물체의 주안점을 곧이곧대로 써 내려간 어떤 글자라고 해야 할까, 의역은 없고 직역만 있는 세계다. 아이는 기차를 타고 송정리에서 노안에서 무안까지 가고 만다. 송정과 노안과 무안의 의역도 생각해 볼 일이다. 기어코 노인은 고향의 냄새가 나는 곳 귀소본능만 지녔다. 그러므로 불쑥 또 일어난다.

    노인은 손자를 앞세우고 걷는 팔자걸음을 좋아한다. 손자는 아이의 변형이다. 내가 낳은 글이기도 하면서 팔자걸음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앞의 세계를 지금 논하고 있다. 여기서는 노인의 세계가 완공되었지만, 그날 본 어린 시신은 온데간데없다. 내가 무엇을 쓴 것인지 시의 목적성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치매처럼 자아의 상실마저 오가는 현실만 있다. 잘린 엄지손가락의 지문, 엄지嚴旨 임금의 엄중한 명령처럼 고집만 있고 그것만으로 글로 쓴다면 한 시대가 걸리겠지만, 그러니까 조금도 바꿀 수 없는 옹고집에 선산만 탄다. 선산先山, 앞의 산 그러니까 이미 시론을 확립한 세계다. 그 속만 탄다.

    비아동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노인은 시계는 볼 줄 아는 걸까, 비아동은 내가 아닌 나, 거울 속의 나를 그릴 수 있는 재간을 말한다. 거울 감역사는 거울이다고 했다. 그래서 선인들은 역사를 집필할 때 람을 넣듯이 가령 자치통감資治通鑑처럼 비아동은 통감通鑑이자 통감痛感이겠다. 그러므로 노인은 글자를 알면 알수록 불행만 느끼는 것이다. 기억해야 하니까 한때 우리는 문자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마음을 새겨 넣을 일은 없었으니까 노인의 잘린 손가락은 다만 갈색에 불과하고 색깔이란 색깔은 없고 칡처럼 오가는 갈로 빚은 덩굴만 같다. 그에게서 담배 누린내와 오이 비누 냄새가 교차한다. 담배擔陪 억지로 지고 가는 무슨 업보 같다. 오이忤耳 비누備累. 나는 나가 아니고 오로지 귀에 거슬리기만 한다. 그러므로 아이는 소리 나는 대로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송정슈퍼 식료품 일체 고추 갈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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